지난 10월,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학가 릴레이 기자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서울여대, 이화여대, 단국대학교, 전국교육대학생연합 등의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은 대학 재정난의 책임을 학생에게 전가하는 행위”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1월 4일에는 350여 명의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상 반대를 요구하며 서울시청에서 서울역까지 행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학교의 적립금은 7450억 원인데 학교 건물 천장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어떤 과에는 전임 교수가 한 명도 채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험 기간마다 자리가 열람실은 부족하고, 예체능 학과는 연습 공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출석 확인도 어려울 만큼 와이파이가 느립니다.” - 11월 4일 등록금 인상 반대 대학생 행동의 날에 참여한 대학생의 발언 중 -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실제로 등록금이 인상될 움직임이 대학가에서 보이기 때문입니다. 교육부 출입기자단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 대학 총장 세미나에 참석한 전국 4년제 대학 총장 86명 중 2년 이내에 등록금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힌 총장은 70.3% (59명)에 이릅니다.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 서울시립대에서는 등록금 정상화 토론회를 진행하며 반값 등록금 정책을 재검토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앞서 학생들이 릴레이 기자회견을 진행한 학교 중 하나인 숙명여대 장윤금 총장은 “등록금 인상 상한액까지 대학이 자율적으로 인상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등록금을 이미 올린 곳도 존재합니다. 국립대학 8곳, 사립대학 9곳, 총 4년제 17개 대학은 이미 대학 재정난을 이유로 등록금을 인상했습니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이유는 “등록금이 이미 비싸기 때문"이며, “교육/시설/복지 등록금 낸 만큼 돌려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7,223명의 대학생 중 95.2%는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학식, 기숙사비, 계절학기 등록금 등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인 ‘체감 등록금’에 대해서도 80%가 “인상되었다"고 답변했습니다. 2020년 여름,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납부한 등록금만큼의 양질의 교육을 제공받지 못했다며 등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던 이유도 이와 유사했습니다. 대학생도, 학부모도 등록금에 대한 부담 정도는 심하지만, 납부한 등록금만큼의 교육/시설/복지가 제공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비 부담 여전히 크다는 점은 통계로도 뚜렷
최근 우리나라 학부모의 고등교육비 부담 정도가 여전히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 지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가정이 사교육비와 별도로 교육을 위해 부담하는 비용 정도를 보여주는 ‘민간재원 공교육비'입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대학 이상 고등교육 부문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재원 공교육비 비율은 0.64%입니다. OECD 회원국 평균 비율은 0.33%로 한국의 절반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관련 통계가 있는 OECD 27개 회원국 가운데 칠레(1.31%), 영국(0.94%), 호주(0.84%)에 이어 4위를 기록했습니다. 국가장학금, 등록금 인상 규제 등 등록금 동결 정책이 추진되었다 해도, 대학 등록금 등 학부모들의 고등교육비 부담 정도가 여전히 크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10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대학 등록금 인상을 막고 있는 규제 완화 문제는 내년에도 동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등록금 인상을 실제로 한 대학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동결 기조’가 과연 유의미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최근 일본 정부는 저출생 문제 완화를 위해 2025년부터 자녀 3명 이상인 다자녀 세대에 대해 가구 소득 제한 없이 모든 자녀의 4년제 대학, 전문대, 고등전문학교(직업학교)의 수업료를 면제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올해 봄 대상자를 한 차례 확대했음에도 2025년에는 수업료를 전면 무상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입니다. 등록금 동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말만 내세울 뿐, 등록금 인상과 대학 재정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무척 대조됩니다.
한국 대학 등록금 부담은 이미 세계 최상위권이며 대학의 자체적인 학교 재정 확대를 위한 노력은 부재합니다. 여전히 대학마다 수십억 단위 횡령과 방만한 지출 내역이 고스란히 감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등록금 인상만이 대학 재정을 충당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대학, 총장들의 주장은 대학생,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1월이면, 대학생들은 학교 위원들과 함께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2024년 납부할 등록금을 심의합니다. 2024년에는 대학과 교육부의 책임 있는 재정 운용을 통해 등록금 부담이 조금이나마 낮춰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