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원준의 경제비평] 왜 영국이었나, 그 첫 번째

침강하는 한국경제, 이륙의 조건을 묻다 ③

누구나 ‘혁신’을 이야기하는 시대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등을 바꾸어 아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경제활동에서 사업가에 의한 혁신은 기존 상품을 개선시키거나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새로운 생산방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지난 정부 당시 어떤 국책연구소에서는 ‘혁신성장’이 “기업의 혁신활동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국가 차원의 경제발전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이지만, 본래 혁신은 주어진 임금 하에서 품질이 향상되거나 원가가 절감된 상품을 창출하는 것이어서 임금을 쥐어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에서는 탈법이든 규범 회피든 노동 착취든 이윤을 늘리려는 꼼수에 흔히 혁신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지만 말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시민들의 소득이 늘어나는 경제성장이라는 익숙한 현상은 실은 그 이면에서 진행되는 혁신 과정의 결과라고 믿는다. 사업가들의 숭고한 노력으로 포장되는 혁신이란 것도 실은 국민경제 수요 측 여건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을 텐데 그런 고민은 찾아보기가 영 쉽지 않다. 그러니 임금을 억누르고 복지를 줄여 수요 측 여건을 망가뜨리면서도 온갖 핑계로 기업들 세금부터 깎아주려는 정책이 나오게 된다. 기업들 세금 깎아주면 저절로 좋은 일이 벌어질 것처럼 세상을 속이면서 말이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혁신 개념으로 경제발전을 처음 설명한 사람이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였다. 경제학자들은 산업혁명 때문에 가능했던 ‘이륙의 성장 역사’ 역시 슘페터의 ‘혁신 경제학’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혁신 경제학에서는 혁신의 결과로 경제가 성장하기 위한 조건과 관련해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니 따져보자. 영국 산업혁명의 실제 사례를 근거로 다음 주장들이 어느 정도나 옳은지 말이다.

증기기관 발명과 산업혁명 ⓒpixabay

혁신 경제학의 주장 1. 경제성장은 혁신이 누적되는 과정

새로운 지식은 늘 옛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법이다. 과거의 발명이나 발견은 새로운 발명이나 발견의 밑거름이 된다. 그리고 지식이 쌓이고 산업의 혁신가들에 의한 성과가 누적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는 성장해왔다. 그런 점에서 혁신은 이전 세대 거인들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는 일처럼 비유할 수도 있다.

특히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비로소 기술이 과학과 융합된 경험은 주목할 만하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과학과 기술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술적 진전은 대개 숙련된 장인 개인의 탁월함의 결과였다. 혁신이 개인적인 체험으로 고립되었던 셈이다. 장인이 도제를 키우는 데에도 여러 한계가 있었으니 과거 세대의 성과를 오늘 세대가 널리 공유하기는 어려웠다.

반면 산업혁명에 즈음해서는 과학이 기술의 여러 분야로 적용되는 단계로 나아갔다. 근대 과학이라는 지식이 산업에서 직접 활용되면서 기술 변화는 과거보다 훨씬 속도가 빨라졌다. 장인의 인적 속성에 갇히지 않고 범용 기계와 결합된 누구나 엄청나게 향상된 생산성을 실현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과학과 기술이 융합하면서 혁신의 성과는 예전보다 널리 공유될 수 있었다. 근대 교육을 통해 이전 세대 거인들의 어깨로 누구나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혁신 경제학의 주장 2. 재산권, 특히 지식재산권의 보호가 성장에 유리하다

해가 떠야 건초가 마르듯, 혁신 성과도 혁신이 잘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제도 환경에서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의 생각에 따르면 혁신을 지원하는 제도 가운데 재산권을 보호하는 제도가 그 중요성 측면에서 첫손에 꼽힌다. 재산권이 안 지켜지면 열심히 일할 이유도 없고 혁신을 추구할 이유도 없다는 논리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주장 같기도 한데 그래서 결국 부자들 재산 지켜줘야 한다는 소리니까 결론은 참 허망하다. 물론 재산권 중에서도 혁신 활동과 밀접히 관련된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이 강조되긴 했다.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특허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다.

혁신 경제학의 주장 3. 혁신은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므로 공정한 경쟁이 필수적

혁신 사업가는 기득권에 감히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이다. 혁신은 이미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기존 사업자와 경쟁함으로써만 성과를 실현시킬 수 있다. 그와 같이 혁신이 기존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경향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라고 불렀다. 혁신 사업가가 성공하려면 시장 지배자의 몫을 자기 것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럴 때 기득권을 가진 기존 사업자라면 과연 순순히 물러날까. 새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혁신 사업가를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들 것이다. 그런데 강력한 기득권 세력이 나서서 혁신을 방해하면 공정한 경쟁은 보장되기 어렵다. 그렇게는 혁신이 고사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공정한 경쟁은 창조적 파괴와 혁신이 성공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

주가 시세판 ⓒpixabay

혁신 경제학으로 ‘왜 영국이었는지’ 얼마나 설명할 수 있나

다소 도식적이지만 혁신 경제학의 주장을 이상 세 가지로 요약했다. 이제 그 주장들이 옳은지 따지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영국이 산업혁명에서 다른 유럽 나라들을 앞설 수 있었던 원인은 어떤 것들이었나? 영국에 특별히 유리한 어떤 요인이 있었나? 슘페터의 혁신 경제학으로 산업혁명이 왜 영국에서 먼저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있을까? 혁신 경제학의 세 가지 주장 가운데 핵심은 재산권 보호를 강조하는 두 번째 주장이다. 미리 결론부터 밝혀두자면, 그런 주장으로는 ‘왜 영국이었는지’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정말 재산권 보호가 중요했나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재산권의 안정성을 혁신성장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강조한다. 그래서 당시 영국(잉글랜드)이 유럽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재산권과 지식재산권의 보장 수준이 높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점이 산업혁명의 토양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 다음 그와 같은 가설을 뒷받침할 증거를 물색해 나선다.

사실 영국에서는 일찍이 17세기 초반부터 발명가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는 특허 제도가 발달하긴 했다. 이후 1688년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왕보다 의회의 권력이 강화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지주들과 신흥 자본가계급의 재산권 보호 장치가 보강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시 사업가들의 혁신 활동이 정말 한층 강화된 재산권 및 지식재산권 보호 덕이었을까? 그런 제도적 변화가 정말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해 영국에서 일찍부터 두드러졌기에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된 것일까? 정답은 ‘글쎄올시다’이다.

주장 2에 대한 반론 1. 오히려 지식재산권을 제한한 제도 변화가 혁신성장에 주효

지식재산권 보호가 강할수록 혁신성장에 유리하다면, 중세의 ‘길드’(중세 유럽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독점 상인이나 독점 수공업자들의 조합)는 어떤가? 길드야말로 지식재산권을 일종의 기술 비밀로 여겼기에 지식재산권 보호 측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제도이다. 하지만 길드가 지배한 시대에 산업혁명의 ‘ㅅ’자라도 진행이 되었나?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길드는 지식재산권을 강하게 보호한다고 해서 그것 자체로 혁신성장에 유리하지만은 않음을 입증하는, 혁신 경제학의 주장에 대한 반대 증거일 수 있다.

실제로는 산업혁명 발발에 앞서 먼저 우편 서비스가 등장했고 인쇄비용이 하락했던 것이야말로 어쩌면 정말 큰 변화였는지 모른다. 당시 그런 변화 덕에 연구자들 사이에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전파되고 공유될 수 있었다. 바로 그와 같은 개방성이야말로 이후 과학과 기술의 융합 및 산업 현장에서 혁신의 진행에 도움이 되었을 법하다는 평가가 있다.

그렇다면 혹시 지식재산권을 엄격히 정의해 제한함으로써, 즉 지식재산권에 적절히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제도화된 공식 절차를 거쳐 기술 비밀이 해제되도록 한 것이야말로 오히려 극적인 기술 변화를 자극한, 진정으로 근대적인 현상은 아니었을까? 기실 지식재산권의 보호 자체보다는, 지식재산권에 근거한 기술 독점의 시간적 유한성(일정 기간이 지나면 누구든 해당 지식재산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성질)을 보장했던 제도 발전이 중요했던 건 아닐까? 그랬기에 누구든 거인의 어깨 위로 올라가 혁신의 물결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자동차 공장의 생산라인 ⓒ현대자동차


주장 2에 대한 반론 2. 영국의 재산권 보호 수준, 상대적으로 높지도 않았다

다른 반론도 있다. 당시 영국의 법적인 재산권 보호 수준이 다른 유럽 나라보다 특별히 나았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발명 특허에 대한 최초의 법안이 선을 보인 시점은 비록 영국보다 늦었지만 당시 프랑스의 재산권 보호 수준이 대체로 영국보다 더 높았다는 지적이다.

주장 2에 대한 반론 3. 재산권 보호 수준이 높다고 성장에 유리할까

재산권이 안정적일수록 혁신과 성장에 거꾸로 불리하다는 반론도 있다. 경제사학자 로버트 앨런에 따르면 프랑스는 재산권에 대한 제도적 보호가 강했던 바람에 관개 사업이나 토지 수용, 도로 건설 등 개발 사업의 시행이 어려웠다. 지주들 중 누군가의 재산권을 침해해 반발을 살 수 있었던 탓이다. 반면에 영국에서 의회는 재산권의 행사 범위를 제한하는 데 있어 프랑스보다 적극적이었다. 영국은 재산권의 안정성이 프랑스보다 덜했다. 그래서 다양한 수익성 있는 개발 사업은 영국에서나 가능했지 프랑스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어쩌면 재산권의 무분별한 보호보다는 그것의 민주적 제한이 영국에서 성장의 이륙에 유리한 여건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강한 의회 권력이 재산권을 더 잘 지켜주었을 것이라는, 그리고 재산권이 더 잘 지켜질수록 경제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적 선입견은 실제 역사적 사실에는 썩 부합하는 것 같지 않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 한국에서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는 오직 부자들만을 위한 상속세 인하 주장은 지난 역사로부터 조금은 배워야 한다. 정말 한심한 일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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