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전임자인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 못지않게 커지고 있다. ‘특수통’ 검사 출신이 또 주요 공직자로 지명된 것도 모자라 윤석열 대통령의 선배 검사였던 인물이 그 어떤 전문성도 갖추지 못한 채 별안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됐다. 결국은 윤 대통령이 이 전 방통위원장의 ‘탄핵 사태’에도 불구하고 방송장악 의도를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윤석열의 선배 검사’ 김홍일, 권익위원장 거쳐 방통위원장으로
김 후보자는 이 전 방통위원장이 국회 탄핵소추안 처리를 앞두고 도망치듯 사표를 낸 지 닷새만인 지난 6일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김 후보자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을 역임한 검사 출신이다. 검찰 내에서는 강력통·특수통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무려 27년을 검사로 지내다가 이후 10년을 변호사로 지냈고,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공직자가 됐다. 이런 김 후보자가 만약 방통위원장이 된다면 방통위 15년 역사상 첫 검사 출신 방통위원장이 된다.
단순히 검사 출신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김 후보자는 윤 대통령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는 중수부장 시절에는 중수2과장이었던 윤 대통령의 직속 상관이었다. 지난 대선 때엔 윤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정치공작진상규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윤 후보에게 제기된 의혹들에 대응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7월부터는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 코드에 맞춘 정치적 인물”(언론개혁시민연대), “선배 검사에 대한 보은인사”(참여연대)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보수언론에서조차 ‘검사 출신의 중용마저도 폭이 넓지 못하고 측근들만 돌려쓰고 있다’고 꼬집을 정도다.
실제 김 후보자가 윤 대통령의 ‘검사 선배’였다는 이유 말고는 방통위원장이 되어야 할 어떤 이유도 찾기 어렵다. 그가 검사로 지낼 때는 물론이고, 변호사를 지낼 때도 미디어 관련 사건을 다루거나 경력을 쌓은 적은 없어 보인다. 역대 방통위원장 7명 중에 언론 등 미디어 관련 이력이 전무했던 건 판사 출신인 최성준 전 방통위원장뿐이었는데, 그나마 한국정보법학회장 등을 지냈고 지적재산권 전문가라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실이 제시한 김 후보자 지명 이유는 궁색하기만 하다. 그나마 내세운 것이 그의 ‘인품’이었기 때문이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김 후보자에 대해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읜 후 소년가장으로 농사일을 하면서 세 동생의 생계와 진학을 홀로 책임지고 뒤늦게 대학 진학 후 법조인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라며 “이런 어려운 삶의 경험을 통해 공명정대하면서도 따뜻한 법조인으로 국민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돼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업무 처리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후보자는 법과 원칙에 대한 확고한 소신, 균형감각으로 방통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켜낼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정치검사’에 ‘전관예우’ 의혹까지 ‘소년가장’, ‘공명정대’ 평가와는 거리 먼 이중적인 모습
문제는 현실에서 보이는 김 후보자의 이중적인 모습이다.
우선 ‘정치검사’라는 그의 오명은 ‘공명정대’라는 대통령실의 평가에 의문을 남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DAS) 실소유주 및 BBK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이다.
김 후보자는 2007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지낼 당시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의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실소유, 도곡동 땅 실소유, 투자자문사 BBK 주가조작 관여 등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는데 모두 무혐의 처분을 했다. 대선 투표일을 불과 2주 앞둔 시점이었다. 김 후보자는 이후 당선된 이 전 대통령에게 황조 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를 두고 ‘BBK 의혹 봐주기 수사’에 대한 보상 차원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는데, 그 비판은 의미가 있었다. 훗날 국회에서 BBK 특검법이 통과하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재수사가 착수됐고, 그 결과 2020년 이 전 대통령이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을 확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윤 대통령은 지난해 말 이 전 대통령을 사면복권했다.
김 후보자는 ‘부산저축은행 사건 무마’ 의혹도 받고 있다. 김 후보자는 2011년 대검 중수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초기 대장동 의혹과 관련된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지휘했는데, 수사팀 실무를 이끈 주임검사는 당시 중수2과장이었던 윤 대통령이었다.
2021년 11월 19일 대장동 사건의 피의자 중 한 명인 남욱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김만배가 당시 중수부장이던 김홍일 검사장에게 조우형(브로커)이 사건에 협조할 테니 잘 좀 봐달라는 취지로 부탁을 했다고 한다”고 진술했다고 뉴스타파가 보도했다. 이후 검찰 조사에서도 남 변호사의 진술은 일관됐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김 후보자는 검찰에서 퇴직한 이후인 2015년 수사를 받던 조우형을 ‘몰래 변호’한 의혹을 받고 있다”며 “남 변호사는 2021년 11월 19일 검찰 조사에서 ‘김 후보자가 2011년 저축은행 수사 당시 조우형이 검찰에 협조한 대가로 선처를 받은 사실을 검찰에 진술하도록 조언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는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내다가 2013년 3월 퇴직한 이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로 쭉 지냈다. 만약 남 변호사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김 후보자가 대검 중수부장으로서 수사를 지휘할 당시 조우형의 범죄를 알고도 덮어줬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이 ‘소년가장’으로 포장하며 내세운 김 후보자의 근면성실한 이미지도 훗날 재산 증식 과정을 살펴보면 퇴색된다.
김 후보자는 2013년 관보에 본인과 가족 명의로 12억153만원의 재산을 신고했고, 이번 인사청문회를 앞두고는 총 61억7천300만원을 신고했다. 재산이 공직 퇴직 후 10년 동안 5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특히 김 후보자는 2018년부터 최근까지 법무법인 세종 등 4개 기업에서 총 26억7천598만원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 퇴직 후 급격히 늘어난 재산의 상당한 금액이 4개 기업으로부터 급여 명목으로 받은 돈인 셈이다.
김 후보자는 2013년 4월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고, 그 다음달 바로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세종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과업체 오리온 사외이사를 2017~2021년까지 4년, 계룡건설 사외이사를 2019~2021년까지 2년간 지내기도 했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각 기업과 대형로펌에서 부적절한 전관예우는 없었는지 인사청문 과정에서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익위의 방송장악 도구화 논란 결국 방통위원장 목표는 방송장악?
이처럼 김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색한 만큼, 김 후보자를 지명한 건 결국 방송장악의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김 후보자가 지난 5개월간 권익위원장을 지내면서 권익위를 방송장악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지적도 이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지난 7월 김 후보자가 권익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권익위는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의 법인카드 부정사용 의혹 등을 조사해 이들이 김영란법 또는 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했다고 신속히 결론을 내리면서 방통위가 이들을 해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줬다. 이에 대해 지난 6월 퇴임한 전임자인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현재 김홍일 권익위원장이 청탁금지법이나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에 대한 조사 권한을 이용해서 정권의 방송장악에 사실상 행동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낙하산 논란 속에 새로 취임한 박민 KBS 사장이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권익위에 신고된 사건에 대해선 두 달 가까이 되도록 결론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성명에서 “권익위원장 김홍일이 윤석열 정권이 방송장악을 위해 임기가 남은 공영방송 이사들을 해임할 때는 권익위의 조사권한을 조자룡 헌 칼처럼 휘두르다가, 윤 대통령의 술친구 박 사장의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 의뢰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노골적인 이중성과 불공정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으로 내정된 데 대해 “결국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언론탄압과 방송장악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윤석열 정권의 시대착오적 광기”라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가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되고도 권익위원장을 계속 겸직하고 있는 것도 논란이다. 김 후보자는 지난 11일 권익위로 출근했고, 12일에도 권익위원장 자격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에는 방통위원장 후보자 자격으로 방통위 업무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성명을 내고 “양손에 떡 쥐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라며 “언론장악에 눈먼 윤석열 정권의 블랙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김 후보자는 13일 정부과천청사 인근에 마련된 청문준비단 사무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 출신으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런 우려를 잘 듣고 있다”며 “그동안 법조계와 공직 거치면서 쌓아온 법률 지식이나 규제와 관련된 여러 경험들을 토대로 맡겨진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해서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권익위원장 겸직 논란에 대해선 “오늘 (권익위에) 휴가를 냈다”며 “적절한 시기에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공영방송 개혁과 가짜뉴스 문제, 포털 규제 등에 있어 전임자의 기조를 이어가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규제라기보다는 맡겨진 역할을 성실히, 그리고 정성껏 수행하겠다”고 답하면서 “절차를 거쳐서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된다면 방송과 통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위해서 정말 성실히 열심히 근무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