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법원장 후보 추천제 없앤다고 재판 지연 해소되나

내년 2월 법원장 인사를 앞두고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논란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부의 시급한 과제로 ‘재판 지연 해소’가 떠오른 가운데, 일각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다. 하지만 복합적인 원인을 단순히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서 찾는 것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문재인 정부 당시 ‘김명수 대법원’이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2019년 도입한 정책이다. 그동안 고법 부장판사가 맡아온 지방 법원장직을 각 법원 소속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추천한 후보군에서 대법원장이 1명을 임명하는 제도로, 대구·의정부지법에서 시범 실시해 올해 전국 20개 지방법원으로 확대 도입됐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도입된 배경으론 박근혜 정부 당시 벌어진 ‘사법농단’ 사건이 꼽힌다. 이는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사건이다. 대법원장의 강력한 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이 판사들을 통제하고, 이것이 결국 ‘사법농단’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도입된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각 법원이 대법원장의 입김에서 벗어나 사법행정의 민주성을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던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조 대법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이 신속 해결되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재판 지연 해소가 사법부의 핵심 개혁과제로 떠오르면서다. 재판 지연이 당면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사법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재판의 평균 처리 기간이 민사 본안의 경우 245일에서 420일, 형사 공판은 158일에서 223일로 증가했다. 이로 인해 재판 당사자들의 권리 침해도 잇따르고 있다.

일각에선 판사들의 투표로 법원장 후보가 결정되면서 법원장 후보가 될만한 부장판사들이 투표권을 가진 판사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신속한 재판을 독려하지 못한 탓에 재판 기간이 늘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없애고 기존의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를 되살린다고 해서 재판 장기화 문제가 풀릴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전문가들은 재판 장기화의 원인은 복합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복잡한 사건의 증가로 인한 심리·판단·판결서작성 시간 증가, 변호사 수의 급증에 따른 공격적 소송행위 증가와 이에 대응할 법관 수 부족, 3년 넘는 기간 동안 재판 진행을 중단하게 한 코로나19 유행, 법조일원화에 따른 법조경력자 법관임용제도의 실시와 이에 따른 법관의 고령화 등도 재판 장기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야간·주말 근무 등이 줄어든 사회적 분위기는 법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재판 지연 문제를 풀기 위한 사회적 논의는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도입된 배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은 경계해야 한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