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두고 또 등장한 ‘여성 징병제’, 이게 성평등의 길?

왜 류호정은 ‘여성 징병제’를 갑자기 꺼내들었을까

금태섭 전 의원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선택’의 젠더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2023.12.11. ⓒ뉴시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여성 징병제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해 논란이다. ‘병역 성평등’을 이뤄야 한다는 취지인데, 여성이 군대에 간다고 해서 성평등이 이뤄진다고 볼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소모적인 젠더 갈등만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태섭·류호정, ‘병역에서부터 가사까지 성평등’ 정책 발표 


류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금태섭 전 의원과 함께 젠더 정책 합동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병역에서부터 가사까지 성평등’이라는 정책 방향성을  설명했다. 류 의원은 금 전 의원과 함께 ‘새로운 선택’이라는 신당을 창당하기로 한 바 있다.

금 전 의원은 “군대에서 나라를 지키는 남자, 집에서 가족을 돌보는 여성이라는 성역할에 대한 구분이 한국적 가부장제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며 “남성 독박 징병, 여성 독박 가사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정에서 성평등을 이루려면 병역 성평등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 의원도 “국방부에 따르면 인구 절벽으로 인해 병역자원이 부족해진다”며 “시민으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보고, 그중 여성 징병제·모병제 등을 저희가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저출산으로 인해 생긴 병역자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여성 징병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류 의원은 이튿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노동시장과 돌봄영역에서 성평등 진전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여성 징병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하지만 모든 사회적 영역에서 어떤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정치집단이라면 가사에서의 성평등도, 병역에서의 성평등도 역시 논제로 꺼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각 커뮤니티에서 그냥 단지 화가 나서 ‘여자도 군대 가라’고 말씀을 하시곤 하는데, 그런 취지에서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병역 제도 문제와 성차별 문제 어느 것도 도움 안 돼” 비판 봇물


이러한 주장에 대해 진보진영 안에선 비판이 터져 나왔다. 진단과 대안이 모두 잘못됐다는 것이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SBS 라디오에 출연해 “현재 존재하고 있는 성차별의 구조를 극복하지 않으면 군에서 여성이 늘어나는 것이 얼마나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아닐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저는 별로 좋은 정치행보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군대 내의 성차별, 성폭력 문제로부터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도 기자회견에서 “‘여성도 군대 가면 성평등’이라는 식의 주장은 한국 사회의 병역 제도 문제와 성차별 문제, 둘 중에 그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성평등을 명분 삼아 화젯거리만 던지는 무책임한 접근은 그간 보수진영에서 수없이 반복해 왔던 갈라치기 정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 수많은 남성 청년이 기저질환, 장애 등 병역을 할 수 없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상비병력 50만명을 유지하기 위해 강제징병 돼야 하는지 질문과 고민을 던지는 것”이라며 “우리 군이 인권친화적이고 성평등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보완과 개선이 뒷받침돼야 하는지, 현실 진단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여성 징병제를 논하기 전에 여성을 포용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선 성폭력과 성차별에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21년 상급자에 의해 강제추행을 당하고, 사건을 은폐하고 무마하려는 국방부와 가해자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예람 중사 사건이 대표적인 군 성폭력 사건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군대에서 온갖 물리적 폭력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2014년 선임병들의 가학적인 괴롭힘과 폭행으로 사망한 윤승주 일병 사건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선택’이 여성 징병제 도입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노르웨이 등 북유럽이 실시하고 있는 여성 징병제를 언급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반박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주로 남자만 군대 가는 것이 억울하니 여자도 군대 가라는 식으로 여성 징병제 도입을 주장하거나, 저출산으로 줄어든 병력을 충원하기 위해 여성도 징병하자고 주장하곤 하는데, 이와 달리 외국에서는 군대 내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이나 사회 전반의 성평등 차원에서 여성 징병제가 논의된다는 것이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금 전 의원은 ‘가정에서 성평등을 이루려면 병역 성평등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여성 징병제를 시행했던 노르웨이의 사례를 보더라도 금 전 의원이 인식이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여성 징병제를 시행해서 성평등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 성평등한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 징병제가 시행된 것”이라며 “성평등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군대가 사회보다 앞서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를 가장 마지막에 수용하는 것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징병제(군대)를 통해서 사회평등을 구현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일 뿐”이라며 “정부가 징병제도가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애써야 하는 것과 별개로 애초에 징병제는 평등을 위한 제도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징병제를 통해 평등을 구현하겠다는 건 쿠데타로 민주주의하겠다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이미 헌법재판소에서도 남성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병역법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세 차례나 나왔다. 지난 9월에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남성의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나왔다. 국가나 기업이 채용시험에서 군복무를 마친 이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이른바 ‘군가산점제도’ 역시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사라졌다. 군가산점제도가 오히려 각종 차별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꾸준히 제기한 대안은 ‘모병제’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그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나온 주장이다. 모병제는 본인의 자유의사와 희망에 따라 군에 복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억지로 군대에 끌려가는 남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여성에게도 폭탄을 돌리는 게 아니라 남성이든 누구든 군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복무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선 때에도 공약으로 언급됐던 것이다. 대선 당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국방개혁 일환으로 ‘한국형 모병제’를 공약했다. 징병·모병 혼합 운영제를 거친 뒤 오는 2030년대까지 단계적인 전원 모병제 전환을 골자로 한다. 또한 단계적 병사 봉급 인상으로 최저임금을 달성하겠다고도 공약했다. 심 후보는 “군을 지원함에 있어 다양한 성, 피부색, 종교 등 어떠한 차별도 금지되며 우리 군은 말 그대로 평등군대로 재창조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소속인 류 의원 역시 “저는 모병주의자”라며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 역시 2024년까지 모병제로 완전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후보는 모병제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로 폭력적인 병영문화 개선, 지속적인 인구 감소, 평화군축 실현 등을 내세웠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경우 선택적 모병제 도입과 함께 2027년까지 병사 월급 200만 원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후보는 기자간담회에서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과거로 가는 네거티브 방식”이라고 비판하면서 “가능하면 군대에 억지로 안 가게 해주자”는 것이 자신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경제력이나 국방력 수준, 국방의 개념 자체가 ‘앞으로 모두가 고역을 겪지 않는’, ‘억지로 군대에 가지 않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며 ‘징병을 기본으로 하는 선택적 모병제 도입’을 역설했다.

부족한 병력을 꼭 인력만으로 메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는 “우리 군대도 장비·무기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첨단기술, 스마트 강군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모병제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페이스북에 별다른 설명도 없이 “병사 봉급 월 200만 원”이라는 한 줄을 대뜸 적어 진정성 논란이 일었다.

새로운 선택 페이스북 ⓒ새로운 선택 페이스북

왜 류호정은 ‘여성 징병제’를 갑자기 꺼내들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류 의원이 여성 징병제 이슈를 대뜸 거내든 것은 청년 남성들이 주된 지지층인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 전 대표 역시 별도의 신당 창당을 예고한 상황이다. 

실제 선거철만 되면 표심 잡기에 급급한 나머지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잘못된 방향으로 여성 징병제가 거론되곤 했다.

2021년 4월 재·보궐선거 직후에도 ‘여성 징병제’ 이슈가 별안간 떠올랐다.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큰 표 차이로 제치고 당선됐는데, 강남 3구 거주민과 60대 이상 등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뿐만 아니라 20대 남성이 압도적으로 오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었다. 그러자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여성 징병제가 뜬금없이 소환됐다. 민주당에 등을 돌린 20대 남성의 민심을 달래려는 의도가 컸다.

여성 징병제 이슈는 사회적 논의로 확산되지 못하고 곧 사그라드는 듯 하더니,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가릴 것 없이 또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대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현행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면 전환하고 이에 더해 여성도 군대에 가도록 하는 ‘남녀평등복무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도 징·모병제 혼합을 기반으로 한 ‘남녀공동복무제’를 공약했다.

이와 관련, 이 활동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선거 때면 반복되는 지겨운 이야기”라며 “금 전 의원과 류 의원은 양쪽 모두의 혐오를 비판하며 합리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자신들이 비판하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녀 갈등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젠더 갈등의 시선으로 징병제를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류 의원은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부인했다. 류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이 전 대표와의 연대를 고려해 병역 성평등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전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류 의원은 “금 전 의원의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저와 이 전 대표라는 정치인 사이에 지금 시점에서 공통점을 찾는 건 상당히 어렵다”며 “제가 지금 해보자고 하는 정치는 우리 진영의 지지자가 좋아할 만한 말과 행동만 하고, 상대 진영의 지지자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하는 정치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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