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시기 기술 변화의 근본 원인은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가설은 영국(잉글랜드) 노동자들의 고임금 때문에 영국에서 기술 진보가 두드러졌다는 설명이다. 임금 수준이 높으면 자본가는 노동시간 당 생산량, 즉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위해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이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혁신과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18세기 중반 영국의 주요 도시들은 세계에서 가장 노임이 비싼 지역이었다.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모습 ⓒ자료사진
임금 상승이야말로 혁신과 기술 발전을 자극하는 요인
반면 저임금 국가한테는 선진국의 신기술을 들여오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신기술은 대개 신규 설비에 체화된 형태로 도입되어 노동력의 사용을 줄이고 기계 등 생산수단의 구성 비중을 늘리는데, 저임금 국가의 경쟁력은 저렴한 인건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 도입이 늦어지면 노동생산성도 지체되고 그런 까닭에 임금도 정체되고 만다. 낮은 임금과 낮은 생산성 사이에 일종의 악순환이 초래되는 셈이다. 그러니 영국이 저임금 국가였더라면 산업혁명은 아마 다른 나라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도 보수적인 주류경제학 이론에서는 노동력이 풍부해 임금이 낮은 나라는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많이 요구되는 노동집약적 산업에 ‘특화’하고 자본이 많이 축적되어 기계화가 진전된 나라는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덜 요구되는 자본집약적 산업에 특화하는 편이 최선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워 보인다. 저임금 국가로 출발했지만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인 몇 안 되는 사례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갇히지 않고 국가 주도로 산업 전환에 성공해 임금과 생산성의 상승을 실현한 경우밖에 없으니 말이다.
반론에도 불구, 부정하기 힘든 임금 상승 효과
그러나 반론이 있다. 당시 영국에서 임금이 높았다지만 노동생산성은 그보다 더 높았으므로 고임금 때문에 기술 변화가 자극된 건 아니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를테면 노동 1시간에 대해 임금이 10만원으로 비싼 편이어도 그로 인한 수익이 20만원이라면 자본가로서는 노동력을 덜 쓰는 신기술 도입이 별로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의 이륙이 있기 전 18세기 영국은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숙련 장인이 특별히 더 많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영국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이미 산업혁명 전부터 다른 나라보다 딱히 더 높았을까. 그런 점에서 수긍이 어려운 반론이다.
다른 만만치 않은 반론도 있다. 이번에는 당시 프랑스나 네덜란드의 상업 중심지도 영국 못지않게 임금의 절대 수준이 높았다는 사실이 반대의 근거다. 따지고 보면 영국과 이들 나라 사이에 임금 격차가 크지도 않았는데, 영국 직물공업에서 노동생산성을 10배, 100배까지 끌어올린 기술 변화가 왜 프랑스나 네덜란드에서는 비슷하게 수용되지 못했는지는 의문이다. 임금 말고 다른 이유가 있었을 법도 하다. 다만 임금의 절대 수준은 비슷했다 해도 영국은 제조업 기반이 더 강했기에 임금 상승이 제조업 기술 변화를 야기한 효과는 영국에서 더 컸을 것이다.
영국이 아니면 안 되었던 진짜 이유
임금의 절대 수준 자체는 덜 중요할 수 있어도, 적어도 노동력이 다른 생산요소보다 얼마나 상대적으로 비싼가는 확실히 중요한 문제였다. 기계설비 임차 시 발생하는 비용과 비교하면 17세기 초까지는 영국이 프랑스보다 임금이 저렴한 편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이 되면 영국이 프랑스보다 임금의 그 상대적인 수준이 60%나 높았다. 영국의 북부와 중부 탄광 지대는 당시 세계에서 석탄이 가장 저렴했기에 에너지 비용과 비교해서도 영국이 유럽 다른 나라보다 임금이 높았다. 영국 자본가들은 개별적으로는, 노동력이 더 비싼 만큼 기계나 에너지를 더 많이 쓰는 방향으로 생산기술을 변화시킬 동기가 분명했던 셈이다.
영국 자본가들은 설비를 업그레이드하고 규모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벌어들일 수 있는 이윤이 늘어나는 것을 현실 경험으로도 체득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생산성도 극적으로 향상되었다. 영국이 아니면 당시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 정도로 기계화의 이득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것은 다른 생산요소의 가격과 비교한 임금의 상대적인 수준이 영국에서 제일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바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한 가지 진짜 이유였다.
증기기관 발명과 산업혁명 ⓒpixabay
산업혁명의 임금주도성장 특성이 인류사적 이륙을 가능케 했다
요컨대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의 기술 변화는 상대적 고임금을 배경으로 했다.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생산기술 선택과 관련된 경제의 ‘공급 측면’(생산)이 부분적으로 임금주도성장의 특성을 보인 것이었다. 공급 측면 임금주도성장 특성은 임금 상승이 기술 진보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개선시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개선된 노동생산성은 재차 임금이 오를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저임금 국가와는 달리 높은 임금과 높은 생산성 간 선순환이 가능한 여건이 되는 것이다.
물론 산업혁명 기간 영국이 오늘날 의미에서 제대로 된 ‘임금주도경제’일 수는 없었다. 노동의 교섭력 강화로 자본가계급에 비해 노동자계급의 소득 몫이 늘어나면서 분배가 본격적으로 평등해지고 그로 인해 수요(소비와 같은 생산물 구매)도 늘어나야 경제의 ‘수요 측면’이 임금주도성장 특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경제의 공급과 수요 모두 임금주도성장 특성을 보여 평등한 분배가 수요 확대를 매개로 혁신과 기술 진보로 이어질 때 비로소 온전한 임금주도경제가 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참정권과 단결권, 교섭권, 파업권이 부인되는 역사적 조건에서는 임금주도성장은 어차피 불가능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부분적인 임금주도성장 특성만 해도 영국의 산업혁명이라는 인류사적 이륙을 도운 핵심 요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