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근본적 변화는 생산을 조직하는 기존 방식과 과거의 위계에 도전하면서 혁신을 주도하는 주체 세력을 필요로 한다. 낡은 질서에 맞서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갈 새로운 사람들이 없으면 안 된다. 그들의 역량이 미약하고 그들의 부상이 제도적으로 가로막힌 사회라면 혁신의 물길을 키우기 어렵다.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는 최근 저서 『권력과 진보』를 통해 영국이 경쟁자들을 앞서면서 산업혁명의 발원지가 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진짜 이유로 근대 영국을 ‘개천에서 난 용들’의 나라로 만들어준 사회 변화를 꼽았다.
과연 용들을 키워낸 영국은 어떤 사회였나? 사연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통치 기간에 도시와 항구를 중심으로 상인들과 숙련 장인들의 경제적 역할이 점차 확대된 것이 시작이었다.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옮겨온 데다 대영제국의 공격적인 해외 팽창과 식민지 개발로 상업과 공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그때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새로운 사람들이 무대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민혁명과 새로운 질서
우여곡절도 있었다. 때마침 대두된 왕권신수설(왕의 권력은 신이 부여한다는 사상)은 신흥 세력의 부상을 막았다. 그러나 1642년 발발한 청교도 혁명은 의회파와 왕당파 사이의 내전으로 번지면서 영국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올리버 크롬웰이 이끌던 의회파의 일부였던 수평파는 아무도 정치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보편참정권’을 주창했다. 전쟁은 의회파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것은 왕의 전제 정치에 반대하는 입헌주의(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헌법에 의해 제한해야 한다는 사상)가 대세로 자리 잡는 계기였다. 그 후로 왕권을 제한하려는 권력 투쟁이 이어졌다. 절정은 1688년 명예혁명이었다.
명예혁명은 토지의 재분배를 가져오지도 않았고 수평파가 옹호한 보편 인권의 선언도 없었다. 국가의 통치 방식에도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명예혁명은 의회가 새롭게 부상한 실력 있는 부자들의 재산권을 제도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내전과 혁명을 거치면서 영국은 다른 어느 유럽 나라보다도 일찍 중세적 가치를 내던지고 누구나 부자만 되면 인정받는 자본주의 사회로 어느새 변해 있었다.
사다리에 올라탄 새로운 부자들
중세는 모든 이의 자리가 날 때부터 정해진 엄격한 신분 사회였고 계층의 상향 이동 가능성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18세기와 19세기 영국에서는 스스로를 중간 계층이라고 여기는 새로운 사람들이 사회적 위계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탄광 지대와 주요 도시에서는 신흥 ‘사업가’라는 사람들이 돈을 벌어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 시절에는 유럽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존재한 나라가 영국뿐이었다. 중간 계층 사람들이 야망을 품을 수 있도록 허락한 영국 사회의 변화가 산업혁명의 진정한 숨은 배경이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사회적으로는 개천에서 난 중간층이 돈을 벌어 용으로 신분 상승하는 과정이었다.
사다리에 오른 중간 계층 사람들은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었기에 고등 수준의 과학을 정식으로 배워서 기술 변화를 이끈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신만의 숙련 기술이나 사업 수완에 의지해 산업에서 마주하는 실용적인 문제들에 천착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적어도 초창기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기계들은 수준 높은 과학을 적용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 기계들 대부분은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사업장의 통제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설계를 얻고자 했던 수년에 걸친 실험 과정의 성취였다. 작은 공정 개선들이 모여 생산시스템이 변모하고 그 과정에서 생산성이 개선되면서 전에 없던 산업적 가능성이 창출된 혁신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자본가계급의 시대가 열리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은 새로운 사람들이 혁신의 주인공으로, 역사의 주체로 사회 전면에 등장한 사태였다. 배경이 좋지 않아도 유용한 혁신 방안을 제시하고 자금을 모아 실행시킬 수만 있으면 기회의 창이 열렸다. 다만 그들은 신분제의 밑바닥에서 신음하던 피지배계급 사람들은 아니었다. 중세적 세계관 기준으로는 여전히 미천한 신분 출신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대개 집안 대대로 무역상이나 숙련 수공업자로서 재산을 축적해온 배경이 있었다. 개천이나마 가질 수 있었던 자산가들이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산업혁명은 개천에서 나서 용이 된 새로운 부자들을 탄생시켰다. 자본가계급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