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초고속 성장 신화가 저물고 있다. 한국은행이 17일 발간한 ‘한국경제 80년 및 미래 성장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2030년대부터 0%대로 낮아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전망한 생산성 시나리오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2020년대 2.1%, 2030년대 0.6%, 2040년대부터 마이너스 성장(-0.1%)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최상의 시나리오에 따르더라도 성장률은 2020년대 2.4%, 2030년대 0.9%, 2040년대 0.2%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올해 한국의 잠재 성장률을 1.9%로 추정했다. 그리고 이 수치는 2030~2060년 0.8%로 더 내려갈 전망이다. 어떤 전망에 근거해도 앞으로 우리나라 경제는 중장기적으로 잘 해야 연 1~2%대의 저성장, 최악의 경우 마이너스 성장을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고성장 신화는 거대한 인구의 중국을 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1980, 1990년대나 정보기술(IT) 혁신이 이뤄졌던 2000년대 초반 이야기다. 저성장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최악의 인구 감소를 겪는 중이다.
문제는 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너무 오랫동안 고성장 가도를 달려온 덕에 우리는 낮은 성장률이 엄청난 위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성장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성장을 거부해 온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 하마 노리코(浜矩子) 교수는 오래 전부터 저성장을 겪은 일본 경제에 대해 “우아하고 품위 있게 늙어갈 준비를 하자”고 역설했다. 이미 일본의 경제 규모는 충분히 커졌으므로 더 이상 성장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는 저성장의 길목에서 성장률을 높이겠다며 수출에 올인하다 보면 저임금 국가들과 경쟁하느라 자국 노동자의 임금을 깎을 수밖에 없다. 이는 모두가 불행해지는 지름길이다.
한국 경제는 분배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규모를 충분히 넘어섰다. 더 이상 성장률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 클럽 같은 대국병도 버려야 한다. 폭발적인 성장이 국민들의 행복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적절한 분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풍요롭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 나간다면 우리는 충분히 우아하고 행복하게 늙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