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자료를 경찰에 이첩한 8월 2일 국가안보실(대통령실)과 해병대 지휘부 간 통화를 한 기록이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에 앞선 대수비 회의에서 수사단 조사 내용을 보고받은 뒤 국방부 장관을 질책하고, 군 윗선에서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특정하는 데 대해 문제를 삼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통화 사실은 윤 대통령발 수사외압 의혹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정황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중의소리’가 확인한 통화기록에 따르면 지난 8월 2일 국가안보실에 파견된 김모 대령과 김모 해병대 사령관 비서실장(대령)이 통화를 했다. 김 대령은 이날 오후 12시 51분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수신 거부됐고, 그로부터 35분 뒤인 오후 1시 26분 두 사람의 통화가 이뤄졌다.
두 사람이 통화를 한 시점은 해병대 수사단이 임 전 사단장 등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수사가 필요하다는 등의 자체 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한 지 1시간 30여 분 지났을 때였다. 이 통화가 있은 지 24분 후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경찰에 전화해 이첩 자료를 회수하겠다고 통보했다. 또한 같은 날 군당국은 해병대 수사단을 지휘하던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의 보직을 해임하고, 군검찰을 통해 박 대령을 ‘항명죄’로 입건했다.
사건 이첩과 회수, 박 전 단장에 대한 보직해임 및 항명죄 입건 등 절차가 일사천리로 긴박하게 이뤄지는 사이에 안보실과 해병대 수뇌부의 통화가 있었던 것이다. 이첩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질책과 회수 계획, 이첩을 강행한 박 대령 인사 조치 등에 대한 대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해당 통화기록은 박 대령을 항명죄 혐의로 수사하던 군검찰이 확보한 것이다. 상식적이라면 이 통화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사실관계를 토대로, 외압 의혹과의 연관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외압 작용 여부는 박 대령의 항명죄 성립에 핵심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검찰은 해당 통화기록을 재판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안보실 파견 대령을 포함해 대통령실 관계자 단 한 명도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은 상태다. 군검찰은 외압과의 관련성을 배제한 채 박 대령을 재판에 넘긴 것이나 다름없다. 이 재판에서 외압 여부에 대한 심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왜곡된 판결로 이어질 수 있다.
채 상병 사망 사건에서 파생한 외압 의혹은 별개 사건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됐으나, 공수처는 수사에 착수하지도 못한 상태다. 해당 사건을 담당하던 공수처 특별수사본부는 직제 개편으로 인해 18일 자로 폐지됐고, 신설되는 수사4부로 사건이 넘어갈 예정인데, 담당 인력 배정 등 직제 개편과 관련한 기초적인 실무 작업이 얼마나 걸릴지도 장담할 수 없다. 초대 공수처장의 임기가 내년 1월 만료됨에 따라 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이 들어선다면 외압 의혹 수사는 무기한 계류되거나, 묻힐 것으로 보인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기 전에 사표가 수리되면서 탄핵 절차로 외압 의혹을 규명할 기회도 날아간 지 오래다. 채 상병 사망 사건 자체에 대한 수사 역시 군당국의 이첩 자료 회수, 국방부 조사본부 재수사 등 석연찮은 과정을 거쳐 임 전 사단장 등 장성급 책임자가 혐의 대상에서 빠진 채 경찰에 맡겨진 상황이다.
결국 남은 건 특검이다. 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을 지난 10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국회법에 따라 신속처리안건 최장 심사 기간(240일)을 거쳐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되는 데 남은 시간이 너무 길다. 당장 연내 국정조사 요구안이 처리돼 내년초 국정조사라도 실시해 특검 도입의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