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쿠데타 맞선 군인도 예우하는 민주유공자법 반대하는 국민의힘

국민의힘 “묻지마 운동권 셀프 특혜법”...민주당 “금전적 특혜 없이 민주유공자 최소한 예우”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 참석자들이 지난 6월 10일 서울 종로에서 윤석열 정부 규탄,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행진을 하고 있다. 한 참석자가 이한열 열사 영정을 안고 있다. 2023.06.10. ⓒ민중의소리

경찰의 물고문에 사망한 박종철 열사, 시위 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 12·12 군사반란에 항거하다 총격을 입은 김광해 전 육군 착전참모부장 보좌관. 이들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아직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절차의 근거를 마련한 게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이다.

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묻지마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라고 맹비난하며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법안 내용을 들여다보면 왜곡·과장된 것으로, 오히려 국민의힘이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상임위 통과한 민주유공자법

민주유공자법은 기존 법령이 따로 있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을 제외한 민주화운동 사망자와 유가족 등을 예우하는 내용으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다. 지난 14일 국민의힘의 나홀로 반발 속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의 의결로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사실 민주유공자법은 이번에 새롭게 논의된 법안이 아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은 1986년 창립 이후부터 ‘국가가 나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당한 분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422일간의 농성으로 2000년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민주유공자법 제정도 탄력을 받는 듯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민주유공자법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었다. 매 국회 때마다 민주유공자법은 발의와 자동 폐기를 반복해왔던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는 2020년 9월 22일 우 의원을 비롯해 의원 20명이 민주유공자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역시 법안이 제출된 지 3년이 흐르도록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국회 안에 잠들고 있었다. 결국 역사들의 부모들이 애끓는 심정으로 국회 앞에서 800일 넘게 천막농성을 벌이고, 곡기를 끊고, 삭발을 한 후에야 국회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주유공자법 처리에 반대했다. 민주유공자법이 상정된 지난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은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민주유공자법은 국민의힘 요청으로 여야 6명으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원회에 넘겨졌고, 거기서 국민의힘 윤창현·최승재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 김종민·김성주·박재호 의원, 진보당 강성희 의원만이 참석해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진보당이 안건조정위에서 꼼수로 민주유공자법을 강행 처리했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민주유공자법을 “운동권의, 운동권에 의한, 운동권을 위한 민주유공자법”이라고 비난하는 홍보물을 제작해 SNS에 퍼뜨렸다. 나아가 “묻지마 운동권 셀프 특혜법”, “운동권 귀족법”, “가짜유공자 양산법”, “운동권 대대손손 특혜 상속법”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민주화 운동의 참된 정신을 훼손하며 586 운동권의 기득권을 법으로 못 박아두려는 민주 유공자법을 단호히 저지할 것”이라고 엄포했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도 “586 운동권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카르텔 법이자 현대판 음서제도라는 비판이 있다”며 민주유공자법을 처리한 정무위에 유감을 표했다.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국민의힘(왼쪽)과 더불어민주당(오른쪽)의 홍보물. 내용이 극명하게 갈린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각 페이스북

민주유공자법이 ‘묻지마 특혜’? 왜곡과 진실

이처럼 국민의힘은 민주유공자법이 이른바 ‘운동권’에게 부당한 특혜를 주는 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무위에서 통과된 법안에는 별다른 특혜 내용이 없다.

당초 원안에는 교육·취업·대출 지원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에 대해 정무위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를 통해 제정안은 기본적으로 5·18민주유공자예우법과 동일한 체계로 구성 되어 있다”며 “따라서 교육지원, 취업지원, 의료지원, 대부지원, 그 밖의 지원도 지원체계, 규모 및 방식 등에 있어 동일하게 규정되어 있어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거센 반발에 지원 범위는 의료·양로·요양 분야로 국한됐다. 원안대로 지원해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평가됐지만, 법안의 통과를 위해 유가협과 야당이 대폭 양보한 것이었다.

우 의원은 18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운동권 셀프 특혜’라고 하던데, 저는 운동권이지만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 그렇게 법을 만들었다”며 “사망하거나 다치거나 실종된 분들에 한해 지원하는 법안이다. 혜택을 볼 사람도 현재 별로 없다. 연로하신 분들만 몇 분 계신다”고 밝혔다. 이어 “유가족들은 (자식이) 민주유공자라는 이름을 받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유공자가 받고 있는 혜택은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다 없애도 좋다고 하셔서 다 없앴다. 다만 법안 심의 과정에서 연로하신 부모들에게 최소한 의료보험 혜택이라도 줘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서 그 정도만 살려 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주화운동으로 무슨 대가를 받으려고 하는 듯한 프레임을 씌우려고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국민의힘을 질타했다.

한현우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 상황실장도 “법안 몇 줄만 읽어봐도 ‘운동권 셀프 특혜’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며 “예산을 지원해주고 현금을 주는 게 아니지 않나”라고 성토했다.

장현구 열사의 아버지인 장남수 유가협 회장도 “이 법을 만드는 목적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사망했거나 다치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하고 명예를 회복시키자는 것”이라며 “다른 유공자들처럼 금전적 혜택을 받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연세대 이한열 열사의 누나 이숙례 씨 역시 “저희 유가족이 민주유공자법에서 원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공권력에 의해 생을 일찍 마감한 가족의 명예일 뿐”이라며 “이한열을 비롯한 수많은 젊은 넋들에게는 이 법의 혜택을 받을 자식 하나 없다. 부모님도 고통 속에 삶을 연명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서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다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소위 ‘운동권’ 출신만 예우를 받는 법안도 아니다. 법안에 따르면 최근 화제인 영화 ‘서울의 봄’에서 다루는 12·12 군사반란을 진압하다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군인도 민주유공자 심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이에 민주당에선 “참 군인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근거 법안을 여당과 정부가 운동권법이라고만 매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민주당은 “불합리한 상황들이 정의롭게 해결되지 않으면, 반란이 또 일어나더라도 이를 막기 위해서 나설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민주유공자법은 진정한 봄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이 민주유공자법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가짜 유공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은 “자금 마련한다고 무장 강도짓을 한 남민전 사건, 그리고 무고한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서 강간·폭행한 서울대 프락치 사건 관련자들 전부 다 민주 유공자 심사 대상으로 들어와 있다”고 주장했고, 송석준 의원 역시 “순수한 민주유공자를 욕되게 하는 사리사욕에 눈먼 ’86 운동권’의 셀프 유공자법”이라고 반발했다. 박 장관 역시 “대한민국의 방향성과 가치를 완전히 뒤집는 반헌법적 법률이자, 민주화 유공자의 얼굴에 먹칠하는 반민주적인 법안”이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국민의힘이 법안 내용을 왜곡해 주장하는 것이라고 야당은 반박했다. 실제 법안을 보면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을 포함해 주요 범죄 실형 선고자는 적용대상에서 제외했고, 예우 대상도 보훈부의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결국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누구를 실제 예우할 것이냐는 정부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정무위 민주당 의원들은 15일 성명서를 통해 “마치 속칭 운동권 출신으로 과격한 폭력 행위자까지 모두 민주유공자로 인정하고 혜택을 주는 것인냥 호도하는데, 명백한 가짜뉴스이자 노골적이고 악의적인 선동”이라며 “정부와 여당, 그리고 일부 언론들이 말하는 소위 반국가적 이적행위나 특정 정파적 입장을 위한 투쟁, 단순 노동운동, 그리고 폭력 행위는 민주유공자로 인정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인정받지 않을 절차적 장치도 모두 마련된 상태”라고 강조했다.

우 의원도 기자회견에서 “송석준 의원이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불법 파업, 무단점거농성, 자유민주주의 체제 부정, 각종 시위 참여한 사람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민주유공자로 인정해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우리가 언제 그랬나”라고 반문한 뒤 “법안 내용을 보면 국가보안법, 내란죄, 살인죄, 이런 범죄는 유공자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도록 돼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가 보훈처를 통해서 한 명 한 명 다 점검하게 돼있다”고 설명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유가족 등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민주유공자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2.18. ⓒ뉴시스

끝까지 반대하는 정부·여당에 “몰염치하고 양심 없다” 비판 봇물

민주유공자법은 향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 법률안 심사를 받게 된다. 문제는 정무위와 달리 법사위는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법사위를 통해 민주유공자법 처리에 제동을 걸겠다는 입장이어서 여야간 충돌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내년 1월까지 열리는 임시국회 기간에 민주유공자법이 본회의를 통과할지 장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 의원은 “민주유공자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 참 좋겠지만, 국민의힘이 끝까지 반대해서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우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투표에 의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국민의힘도 정통성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대통령 선거다. 지금은 대통령 선거가 공기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대통령 직선제를 따내기 위해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싸우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나”라며 “지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누리고 있는 권한은 바로 그때 싸웠던 이들의 피와 땀과 생명이 녹아 있는 제도 덕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희생당한 분들을 영광스럽게 국가유공자 반열에 앉혀드리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 상황실장도 민주유공자법을 반대하는 국민의힘에 대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수많은 민주화 열사들을 능욕하는 것이고, 그들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그리고 독재정권에서 운명하신 열사들의 부모들을 모욕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법안에도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민주유공자법을 반대하는 건 매우 몰염치하고 양심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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