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황태자로 불리는 그가 사실상 여당의 대표 자리에 오른 것이다. 민주당을 향해 ‘특권세력’ ‘전체주의’라는 극언을 써가며 비난하고 여당을 향해 ‘선민후사’라며 국민을 우선하자고 밝혔지만, 정작 그가 내놓은 첫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은 ‘김건희 특검법 불가’였다.
직접 썼다는 비대위원장 수락연설에서 한 위원장은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 전체주의와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야당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대화와 타협은커녕 ‘야당탓’과 ‘이념전’이라는 집권 이후 지속되어 윤 정권의 기조와 같은 태도를 보였다.
국민의힘을 향해선 ‘선당후사’가 아닌 ‘선민후사’, ‘국민의힘’보다도 ‘국민’이 우선이라고 하며 총선을 위한 헌신을 강조했다. 그는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 않겠다’며 지역구와 비례대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한 이들을 공천하겠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하지만 국민의힘 위기의 원인이자 혁신과제로 꼽혀온 수직적 당정관계 극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정관계에 대한 질문에 그는 “상호 협력하고 서로 보완하는 동반자적 관계”라고 말했지만, 동반자적 관계를 위해 당과 대통령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대통령을 보유해 정책적 실천력을 갖는다”고 말해 수직관계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합체 수준’의 당정관계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불렀다.
‘한동훈호 국민의힘’ 당정관계의 바로미터로 꼽혔던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입장은 이 같은 전망에 힘을 더한다. 그는 취임식 이후 받은 질문에서 “총선용 악법”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25일 열린 비공개 고위 당정대 회의에서 나온 “총선 후 추진 등 조건부 수용도 절대 불가”라는 입장에 충실히 따른 것이다.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그가 정국 타개를 위한 해법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일각의 전망은 여지없이 깨졌다.
민주당을 향해선 ‘특권정치’라 비난하고 국민의힘에는 ‘불체포특권 포기’를 요구하면서 정작 여론조사에서 국민 70%가 찬성하는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는 ‘절대불가’라니 이것이 국민을 무시한 ‘특권정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해 비대위원장이 된 게 아니라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하기 위한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정치인 한동훈의 첫발은 ‘선민후사’가 아니라 ‘선윤후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