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상홍의 원전 없는 나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그날따라 새벽잠이 없었다. 누워서 눈만 감고 있었다. 갑자기 침대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집이 흔들렸다. 몸으로 느낀 진동은 약 4초간 이어진 듯하다. 깊이 잠들어 있던 아내도 놀라서 깨고 뒤이어 핸드폰에 재난 경고음이 요동쳤다. 뉴스에서 ‘새벽 4시 55분경 경주에서 규모 4.0 지진 발생’을 전국에 알린 11월 30일 새벽의 일이다. 곧바로 2016년 9월 12일의 경주 지진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계속 가만히 침대에 있어도 되는지,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거나 언제든 나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캄캄한 밤에 날씨는 추웠다. 여진이 느껴지지 않아 따뜻한 방에서 뉴스만 계속 시청했다.

공교롭게 그날 민주당의 김성환, 민형배, 양이원영 의원이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해 월성핵발전소의 격납건물에 매입된 수천 개의 CIP(Cast-in-Placed)앵커볼트가 내진성능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격납건물 안에는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펌프, 냉각수 배관 들이 즐비하다. 하나같이 안전과 직결된 설비이고 이 설비들을 격납건물에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는 것이 CIP앵커볼트다. 여기에 사용된 수천 개의 CIP앵커볼트가 내진성능이 없다는 국회의원들의 폭로였다.

CIP앵커볼트 ⓒ이희택 강연자료


앵커볼트는 콘크리트 바닥이나 벽체에 무거운 시설물을 단단히 고정할 때 사용되는 ‘못’ 역할을 하는 쇠막대 형태의 볼트를 가리킨다. 특히 긴 것은 길이가 1미터에 달하는 CIP앵커볼트는 콘크리트 타설 전에 미리 설치하여 ‘콘크리트를 타설하면’ 벽체와 한 몸이 되는 매입형 앵커볼트다. 그만큼 안전이 특별히 요구되거나 무거운 설비를 단단히 고정할 필요가 있을 때, CIP앵커볼트를 매입한다.

월성핵발전소의 CIP앵커볼트 문제를 처음 제기한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이희택 박사 강연이 12월 28일 울산에서 있었다. 필자는 강연회에 보조 발제자로 초청되어 이희택 박사를 만났다. 이희택 박사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캐나다 규제기관에 ‘비(非) 내진’ 앵커 사용이 허용됨을 확인하였다”는 해명이 거짓이라는 것을 강조한 강연 끝맺음이었다.

CIP앵커볼트 문제 처음 제기한 원자력안전기술원 이희택 박사
“설계보다 짧게 시공되고, 비내진 앵커 사용했다”


과거 월성핵발전소 1호기를 건설할 때는 ‘내진성능’이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월성1호기 때는 증기발생기 같은 ‘안전등급’ 설비를 고정하는 곳에만 내진성능 CIP앵커볼트를 사용했다. 그러나 월성2호기부터는 설계 기준이 강화되어 격납건물 내에는 무조건 ‘내진성능’ CIP앵커볼트만 사용하도록 했다. “캐나다 규제기관에 ‘비(非) 내진’ 앵커 사용이 허용됨을 확인하였다”는 우리나라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해명이 비루하게 들린다.

문제는 내진성능 만이 아니었다. 앵커볼트를 임의로 절단해서 설계보다 짧게 시공한 사실도 드러났다. 예를 들어 1미터 CIP앵커볼트를 콘크리트에 매입할 때, 90센티미터만 매입하고 10센티미터는 돌출되록 해야 한다고 가정하자. 실제 시공에서 설계대로 90센티미터 깊이까지 매입하지 못해, 돌출부위가 10~20센티미터로 더 길게 들쭉날쭉 시공했다. 이후 돌출부위를 10센티미터에 맞춰 절단해서 눈속임한 것이 적발됐다. 당연히 CIP앵커볼트는 설계보다 짧게 매입됐고, 지진 등 유사시 안전을 담보하기 힘들어졌다.

이희택 박사는 CIP앵커볼트의 길이가 설계보다 짧게 시공된 것을 발견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비내진 앵커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즉, 월성핵발전소의 CIP앵커볼트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내진성능만 허용되는 격납건물에 비내진을 사용한 것, 부실 공사로 설계보다 짧게 시공한 것이다.

CIP앵커볼트에 대해 강연 중인 이희택 박사 ⓒ필자 제공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문제의 CIP앵커볼트에 대해 “내진성능 평가를 수행하여 설계지진 요건에 만족함을 확인”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 검사를 수행했던 연구원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고 내부 고발을 한 만큼 규제기관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됐다.

월성핵발전소 격납건물의 CIP앵커볼트는 독립적인 제3기관의 검증이 절실해졌다. 지진 위험지역에 월성핵발전소가 있는 만큼 ‘비내진’ 부품 사용, 설계보다 짧은 부품 사용은 어물쩍 넘길 사안이 아니다. 2012년 영광군의 한빛핵발전소에서 원자로 균열이 발견됐을 때 독일의 독립검증기관인 ‘TUV-Nord’가 조사를 담당했던 사례가 있다. 월성핵발전소도 한빛핵발전소의 검증 사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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