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이도운 홍보수석은 지난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되자마자 브리핑룸으로 내려와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혔다. 이 수석은 “대통령은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는 대로 즉각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그동안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많지만, 이렇게 국회 표결이 이뤄지자마자, 또 공식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건 처음이다. 대통령실 차원에서 공식 용어인 ‘재의요구권’이 아닌 ‘거부권’이라는 표현을 쓴 것 역시 처음이었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을 거부하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거부권 행사의 명분은 매우 궁색하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선거 직전에 노골적으로 선거를 겨냥해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총선용’으로 김건희 특검법을 밀어붙인 것이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는 취지인데, 특검법이 패스트트랙에 태워진 지는 이미 9개월여 전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총선 이후 특검은 수용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특검(법안)에서 야당이 (특검을) 임명한 경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경우에도 여야 합의로 (법안을 처리)했던 것”이라는 논리도 폈다. 하지만 국민들의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특검법에 대해 여당이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협의 자체에 응하지 않았던 적도 없다.
결국 ‘총선용’이니, ‘야당의 일방적 정치공세’니 하는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객관적인 현실은 윤 대통령이 ‘김건희 방탄용 거부권’이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만들어 거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 시절 각종 굵직한 ‘적폐 수사’에서 성과를 냈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토대로 정치적으로 성장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보여주는 지금 모습은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는 국민적 지지의 근거마저 무색케 하고 있다. 자신의 고유 권한을 이용해 가족의 허물을 덮어주는 대통령을 용납할 수 있는 국민은 없다.
윤 대통령은 1일 신년사에서 “‘부패한 패거리 카르텔’과 싸우지 않고는 진정 국민을 위한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면, ‘부패한 패거리 카르텔’이라는 새해 첫 일성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