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새해가 밝자마자 부자감세를 들고 나온 것이다.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 시행을 앞둔 법안을 다른 대안없이 규제혁파라는 이름을 붙여 없어버리겠다고 나섰다. 총선을 앞두고 투자자들의 선심을 사겠다는 얄팍한 전략이자 조세 원칙을 흔드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투세는 주식이나 채권 등 금융투자로 얻은 이익이 연간 5천만원이 넘는 투자자에게 수익의 22~27.5%(지방세 포함)를 세금으로 내게 하는 제도다. 2020년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해 2023년 1월 시행하게 돼 있었으나 증시 악화를 이유로 재검토하자는 정부여당의 주장이 있어 시행을 2025년 1월로 미뤄놓은 상태다.
윤 대통령은 2일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 내년 도입 예정이었던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구태의연하다고 했지만 이는 명백한 부자감세다. 이 법이 통과되던 당시 여야는 주식거래에서 일괄적으로 징수하는 거래세 등을 단계적으로 완화 폐지하는 대신 이익이 났을 경우 소득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즉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 원칙을 흔들겠다고 나선 셈이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서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주장 역시 틀렸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거래세가 없고 소득에 따라 세금을 매기고 있다. 게다가 느닷없이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내놓아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정부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오히려 윤 정부가 아닌가
무엇보다 출범 초부터 법인세 인하, 종부세 인하 등 연이은 부자감세로 정부 재정은 상당한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해 60조원에 이르는 세수 펑크가 난 것에 부자감세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가. 윤 대통령은 금투세 폐지로 계층 이동에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서민들에게 지원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나라 곳간을 헐겁게 하는 부자감세가 무슨 계층이동에 도움을 준다는 말인가.
윤 정부는 지난 연말 여야 합의를 뒤집고 주식 양도소득세가 부과되는 대주주 기준을 10억원 이상에서 50억원 이상으로 대폭 완화하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국무회의에서 급하게 통과시켰다.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의 ‘부자감세’ 시리즈가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겠다. 금투세 폐지는 국회 입법 사안이다. 과세의 원칙을 흔들고 나라 재정을 헐겁게 하고 금융 선진화도 아닌 이런 철학 없는 행보를 국회가 중단시켜야 한다.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를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야당의 단호한 입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