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알려지면 좋을 노래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는 경우는 흔하다. 워낙 많은 노래가 나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을 정도다. 요즘 노래만이 아니다. 오래 전 노래 중에도 다시 들을만한 노래는 많다. 그 중 몇몇 곡은 TV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부활하기도 한다. 만약 나에게 그럴 기회가 주어진다면 되살리고 싶은 노래가 있다. 민중가요 포크그룹 노래마을이 부른 ‘일이 필요해’다.
1980년대 후반부터 경기도 성남에 뿌리내리고 싱어송라이터 백창우를 중심으로 활동한 노래마을은 동요와 국악, 민중가요, 포크를 아우른 독특한 팀이었다. 투쟁가를 부르지 않는 팀, 서정적인 노래를 곧잘 불렀던 팀으로 남달랐던 노래마을의 노래 중에는 ‘나이 서른에 우린’, ‘마지막 몸짓을 나누자’, ‘백두산’,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같은 곡들이 널리 알려졌다. 노래마을의 멤버 중 손병휘, 우위영, 이지상, 이정열은 지금도 활동 중이다.
그 중 ‘일이 필요해’는 노래마을 3집에 실은 노래다. 오래도록 여성주의 예술가로 활동해온 싱어송라이터 안혜경이 곡을 쓰고,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활동한 작가 유소림이 가사를 붙였다. 노래를 발표한지 30년이 지났지만 노래는 여전히 유효하다.
일이 필요해 · 노래마을
끝없는 집안일 반복 또 반복 그 중에 한 가지 먹는 일만해도 하루에 세 번 일주일에 스물 한번 한 달에 아흔 번 일 년이면 천 번이 넘게 굴러 떨어지는 바윗돌을 올리는 시지프스의 노동처럼 여자라서 아내라서 여자라서 어머니라서 사랑의 이름으로 모성애의 이름으로 일 할 의무만이 남겨지고 일 할 권리는 사라져 갔네 나는 일이 필요해 당당하게 살아갈 일이 필요해 사람으로 났으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일이 필요해 나는 일이 필요해
한 평생을 살아도 남는 것은 빈 껍질 뿐 남편은 바빠지고 아이들이 커졌을 때 내 세상 전부는 부엌과 집 텅 빈 가슴만 남아 있다네 나는 일이 필요해 당당하게 살아갈 일이 필요해 사람으로 났으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일이 필요해 나는 일이 필요해 일이 필요해 나는 일이 필요해
노래의 리듬은 경쾌한데 사연은 절절하다. 집안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하고 동의할 것이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청소, 빨래, 음식 준비, 육아 같은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는다. 게다가 어제 했던 일을 오늘도 해야 하고 내일 다시 해야 한다. 반복과 반복의 연속이다. 안하면 티가 나지만 해놓아도 금세 사라져 새로 해야 한다. 이제는 재생산노동이라고 부르는 이 일들을 누군가 해내야 입고 자고 먹고 쉴 수 있다. 하지만 재생산노동은 대부분 여성에게 맡겨지고 하찮은 허드렛일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성역할을 고정시킬 뿐 아니라, 임금도 못 받고, 자아를 실현한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살림을 하고 육아를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 사람의 가능성을 집안에만 묶어두어도 될까. 재생산노동, 돌봄노동을 여성에게만 전담시키는 문화는 억압이고 폭력이다.
일이 필요해 안혜경1집
그럼에도 가부장제 사회인 한국 사회는 오래도록 그 일을 여성의 본분처럼 왜곡해 떠맡겼다. 신사임당을 내세운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로 여성을 얽어맸다. “여자라서 아내라서 여자라서 어머니라서 / 사랑의 이름으로 모성애의 이름으로” 저지르고 정당화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여성의 성역할을 고정시키는 문화가 완전히 사라졌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지금도 여성이 더 오래 가사노동을 수행할 뿐 아니라, 결혼과 출산 이후 많은 여성들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나. 다시 일을 하려해도 원래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저소득 단순 노동을 각오해야 하지 않나. 그 일은 반찬값 버는 일 정도의 취급을 받지 않나.
정부에서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 붓는 것처럼 보여도 출생률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재생산노동과 육아 같은 돌봄노동을 여성이 전담해야 하고, 하던 일을 중단해야 하는 가부장제 문화와 시스템, 여성이 계속 일하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출산 가정에 예산을 직접 지원한다 해도 출산과 육아를 결심하기 어렵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수록 출생률도 높다는데, 여성이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출산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출산과 육아만 거부하는 게 아니라 결혼까지 거부하는 게 당연하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꿈을 이루는 과정이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삶의 의미를 채우는 시간이다. “사람으로 났으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일이 필요해“라고 외치는 이유다.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이들은 자녀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삶을 선택하지 못한다. 과거의 가부장 사회, 농경사회에서는 그렇게 사는 게 당연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삶의 기준과 방향이 달라졌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바뀌었다.
그래서 노래 ‘일이 필요해’가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노래가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한국사회는 이 노래를 박물관에 전시해 두어도 될 만큼 달라지지는 못했다. 30년 전의 노래가 여전히 유효한 세상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그렇다면 올해는 다른 삶, 멋지지 않아도 자신다운 삶을 꿈꾸는 목소리가 세상을 뒤덮어도 좋지 않을까. 신승은, 이랑, 제이클래프를 비롯한 여성 음악인들이 솔직한 삶의 노래를 들려주며 세상을 흔들고 있지만, 여성의 노동과 재생산노동, 출산/육아를 비롯한 돌봄노동에 대한 음악적 증언과 형상화가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이야기는 예술이 되지 못한다고 여기거나, 개인과 내면과 일상에 치중하는 오늘의 예술가들이 외면하거나, 굳이 이런 이야기를 음악으로 듣고 싶지 않다며 우리 자신이 귀를 막고 있는지 모른다. 노래가 되지 못할 삶은 없다. 예술이 되지 못할 이야기는 없다. 반드시 노래가 있어야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라서 아내라서 여자라서 어머니라서” 자기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질문과 도발이 필요하지 않을지. 그 노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 청소년에게, 어린이에게 가 닿아야 하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