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상대 부정, 대화 단절의 정치를 넘어서야

 온 국민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긴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흉기 피습은 천만다행으로 긴박한 고비는 넘겼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명백히 정치 실패의 결과이며, 더 정확히는 상대를 부정하고 대화가 단절된 최근 우리 정치의 예고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정치테러는 용납될 수 없는 범죄다. 어떤 정치세력이든 국민 일부를 대변한다. 정치인과 정치세력에 대한 폭력은 구성원을 부정하고 목소리를 빼앗고 존재를 삭제하려는 반민주적 작태다. 설혹 그릇된 주장을 하는 이들이라도 공동체를 부정하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한 그 존재를 인정받아야 한다. 정치테러는 물론 2차 가해에 해당하는 가짜뉴스를 퍼트리거나 엉뚱한 사안을 침소봉대하는 모든 움직임에 반대한다. 진영과 정파를 넘어 국민 모두가 반민주적이고 비인도적인 범죄를 함께 규탄해야 한다.

무엇보다 범행 진상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경찰은 심문과 주거지 압수수색 등을 통해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또한 범행 목적과 혹시 있을지 모를 정치적·조직적 배경을 확인하기 위한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경찰은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일고의 정치적 고려나 편향 없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상을 밝혀야 한다. 정당을 비롯한 관련 당사자들도 수사에 전폭 협조해야 함은 당연하다.

테러를 유발하는 정치 실패를 시급히 극복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 다시는 이런 범죄가 재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는 엄중 처벌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흉악하고 비극적인 범죄를 낳은 구조적 요인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적 경쟁과 갈등은 민주주의의 숙명이기도 하다. 제도적 민주주의가 진전되면서 과거의 물리적 폭력은 언어로 대치됐다. 비록 가짜뉴스나 극단적 악플 등 공격적인 정치문화가 문제이긴 하나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보다 개선된 측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폭력과 테러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정치의 최대 행위자이자 스피커는 역시 대통령과 정부다. 최근의 정치 악화와 실패에도 그만큼 책임이 크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한 번도 회담을 하지 못했다. 대화가 단절된 것이다. 대신 종북주사파, 공산전체주의, 패거리 카르텔 등의 표현으로 야당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를 사실상 제거 대상으로 지목했다. 여당 안에서도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살풍경이 반복되고 있다. 국회도, 언론도, 시민사회도 정치적 기능을 잃었고, 소수 친위세력이 권력기관을 앞세워 일방적 통치를 하고 있다. 당연히 반발도 점차 더 격렬해지고 있다. 폭력이 정치를 실패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실패한 정치가 폭력을 낳은 것이다. 따라서 일부 극렬 대중이나 정치문화만 꾸짖는 것은 핵심을 비켜 간 것이다. 정치를 바로잡아야 폭력적 행태를 극복할 수 있다. 상대를 부정하며 제거할 대상으로 삼고, 대화를 끊은 채 대결만 하는 정치를 국민들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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