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출신인 김동철 한전 사장이 새해 벽두부터 '민영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다. 김 사장은 2일 열린 시무식에서 "공기업이란 지위가 오히려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건 아닌지 냉정히 돌아볼 때"라며 "전력그룹사 거버넌스를 재설계하고 공기업 체제의 새로운 대안인 국민기업으로 거듭나 공공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그룹사 거버넌스를 재설계한다는 말은 자회사 체제인 발전회사를 민영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공기업 체제의 새로운 대안인 국민기업'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김 사장은 공기업에서 사기업으로 탈바꿈한 KT와 포스코, 이탈리아 전력회사 에넬을 언급하면서 "우리도 이젠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민영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한전을 민영화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사회적 합의가 끝난 문제다. IMF외환위기 이후 경제정책의 근간을 틀어쥔 신자유주의자들이 민영화를 시도했지만 국민적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노무현 정부 당시 발전부문을 분할했지만 발전자회사의 민간 매각은 좌절됐고 배전 부문의 분리 계획도 중단됐다. 그러나 이들은 민영화 계획을 포기하기 않고 기회만 있으면 이를 들고 나와 분란을 조성하고 있다. 이번에 김 사장의 발언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김 사장이 민영화를 시사하게 된 배경은 한전의 적자 문제다. 지금 한전의 적자는 전기의 원가가 되는 국제 에너지 가격의 폭등으로 인한 것이지 '공기업이라는 지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김 사장의 말처럼 한전을 주주라는 이름의 금융회사가 지배하는 '국민기업'으로 만들면 전기 가격의 폭등이 이어질 것임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윤석열 정부조차 이 문제의 폭발성을 감안해 입을 닫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송전망에 대한 민간 투자를 허용하겠다는 정책도 문제다. 한전이 해오던 송전망 건설사업을 민간에 개방하면 여기에 들어간 돈을 전기요금으로 회수해 돌려줘야 한다. 민간 기업들은 수익이 담보되지 않으면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결국 미래의 전기요금을 담보로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는 것인데,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악순환에 불과하다.
과거 정부와 정치권이 한전 민영화를 추진할 때도 한전 사장은 침묵했다. 이번에 김 사장이 내놓은 말이 이례적으로 들리는 이유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 꼴이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여론을 떠보려 한다면 졸렬하다는 비판까지 듣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