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편견과 혐오가 칼날이 되어 민주주의 찔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찌른 혐의로 검거된 김모(67)씨가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4일 오후 부산 연제구 연제경찰서를 나서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일 오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방문을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지지자로 위장한 67세 남성 김 모 씨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왼쪽이 칼에 찔린 이재명 대표는 많은 출혈과 함께 쓰러졌고, 부산대병원에서 1차 치료를 받고, 이후 헬기로 이송해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재명 대표를 공격한 뒤 바로 경찰에 붙잡힌 범인은 자신의 범행 이유 등을 적은 변명문을 제출했다고 한다. 경찰에 구속된 뒤에도 자신이 이재명 대표를 찔렀고, 살인 의도가 있었음을 거침없이 말했다. 일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가 쓴 변명문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깊은 적개심과 혐오의 감점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는 이재명 대표가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저지른 혐오범죄로 보인다. 과연 무엇이 그에게 그런 확신과 편견을 가지게 해 혐오 범죄를 저지르게 한 것일까?

트럼프 발언에 따라 증가했던 혐오범죄
결국 의사당에 난입하며
민주주의를 파괴한 트럼프 지지자들


지난 2022년 범죄학자인 매슈 윌리엄스 영국 웨일스 카디프대 교수가 쓴 ‘혐오의 과학’에선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을 선호하는 기질을 타고났다는 유력한 증거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혐오의 발현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때 생기는 편견적인 사고는 우리 뇌가 학습하는 것이지 타고난 것이 아니다”라며 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요소들이 편견을 강화하고 혐오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혐오를 촉진하는 요소로서 가장 가깝고 당면한 문제로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으로 퍼지는 혐오 게시물들을 꼽았다. 그리고, 정치인의 발언이나 게시물이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한다. 그런 대표적 인물로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꼽았다.

미국 경찰이 기록한 반무슬림 혐오 범죄 수를 살펴보면, 트럼프의 무슬림 관련 트윗과 거리에서 발생한 혐오 범죄 사이의 빈도 패턴이 놀랍도록 비슷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트럼프가 코로나-19를 가리켜 ‘중국 바이러스’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후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급증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발언이 이슬람과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키웠고, 이것이 혐오 범죄를 촉발하는 원인이 된 것임을 알 수 있는 분석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2011년 1월 6일(현지 시간) 미 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저지하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그리고, 이런 편견을 강화하는 메시지는 정치적 문제를 촉발하기도 한다. 지난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워싱턴 D.C. 연방 의회 의사당에 난입했다. 시위대는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 건물 안으로 들어왔고, 일부는 상원의장석까지 점거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 납입이라는 사상 초유의 범죄를 저지른 건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트럼프의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주장을 빌리자면
야당은 함께 정치를 논의할 상대가 아닌
우리 사회의 한쪽 날개가 될 수 없는
제거될 대상이다


이번 이재명 대표를 향한 공격에서도 비슷한 징후들을 엿볼 수 있다. 이번 범죄가 일어나기 오 전부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들에게 혐오를 촉발할 수 있는 발언을 계속 이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9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산전체주의의 생존 방식”이라며 야당과 진보세력을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고 몰아세웠다.

이후에도 “시대착오적인 그런 투쟁과 혁명과 그런 사기적 이념에 우리가 굴복하거나 거기에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고,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등 비슷한 발언을 이어갔으며 대통령 취임 이후 내내 야당과 이재명 대표와 만나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이 없을 정도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이재명 대표를 향해 폭언을 이어 왔다. 지난 9월 18일 19일간의 단식 끝에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이송된 이재명 대표에게 검찰을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재명 대표의 단식을 향해 “단식·자해한다고 사법시스템 정지되면 잡범도 따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1일 국회에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직후엔 취재진들을 만나 “제가 이재명 의원을 잡범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며 “이재명 의원은 잡범이 아닌 중대 범죄 혐의가 많은 중대 범죄 혐의자”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부산 가덕신공항 건설 예정지 현장방문 도중 흉기 피습 당했다.2024.01.02. ⓒ민중의소리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주장을 빌리자면 야당은 함께 정치를 논의할 상대가 아닌 우리 사회의 한쪽 날개가 될 수 없는 제거될 대상이고, 이재명 대표는 중대 범죄 혐의자이면서도 단식을 일삼으며 사법시스템을 무력화하는 인물이다. 또한, 야당인 민주당은 이런 이재명 대표를 비호하는 세력으로 주장해왔고, 보수언론과 보수성향의 유튜브에서도 연일 이런 주장을 담은 비난이 이어져 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난의 강도도 세졌다.

민주주의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며
만들어가는 정치질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가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면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런 매체와 주장에만 귀를 기울여온 김모 씨와 같은 이들에겐 야당과 이재명 대표는 함께 공존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피습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전신당 신년인사회에 있었다. 당시 참석자들 가운데는 이재명 대표 피습 소식에 박수치며 환호한 이들도 있었고, “정치쇼”라고 외친 이들도 있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런 반응에 “내가 습격당했을 때처럼 생각해 주는 것이 국민의힘이 동료 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박수와 환호를 했던 이들에게 야당과 이재명 대표는 내가 아닌, 우리가 아닌 공존할 수 없는 대상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우리는 나와 다른 무엇과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수십만 명이 넘는 시민이 학살된 아픈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런 역사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도 외국인을 타자화해서 공격하는 혐오 발언이 인터넷에 쏟아지고, 여전히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고 거리에서 외치는 극우주의자들이 넘친다.

민주주의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며 만들어가는 정치질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가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면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편견과 혐오가 칼날이 되어 민주주의를 찔렀다. 이런 중대성을 알기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정치권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어온 발언을 떠올려볼 때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자신들의 지난 발언도 다시금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산전체주의 세력’, ‘시대착오적인 그런 투쟁과 혁명과 그런 사기적 이념’, ‘잡범’, ‘중대 범죄 혐의자’와 같은 발언이 계속된다면 이런 비극은 또 다시 되풀이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