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이상 노후화된 주택은 안전진단 없이 바로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게 하겠다", "다주택자를 집값을 올리는 부도덕한 사람들이라고 해 징벌적 과세를 해온 건 정말 잘못됐다", "부동산 문제를 정치와 이념에서 해방하고 경제 원리에 따라 시장원리에 따라 작동되게 해줘야 한다."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내놓은 말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경기 고양시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 모두 발언에서 이같이 약속했다.
한마디로 말해 부동산 관련 세금과 규제를 줄여 집값을 떠받쳐보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같이 진단과 처방이 잘못되었고, 그간의 정부 정책과도 조율하지 않은 졸속 정책에 불과하다. 우선 30년 된 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는다는 건 그 자체로 낭비다.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정책이 없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가 '도덕'의 차원이라는 생각도 황당하다. 어떤 경제학자나 관료들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말은 경제학원론을 처음 배운 대학교 신입생 같은 수준이다.
무자본 갭투자로 전세사기가 벌어져 커다란 사회문제가 된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구제조치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동산 거품으로 인한 PF 부실화 문제는 이제 막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장 재건축이나 재개발이 활성화될 여건도 아니다. 이런 시점에 대통령이 나서서 '부동산 해방'을 부르짖은 것이다. 정책이 현실화하면 더 커다란 시장의 왜곡과 실패가 따라올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런 설익은 정책을 꺼낸 배경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990년대 도시 개발이 이뤄진 일부 지역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는 것이다. 경제 전체의 균형은 도외시하고 일부 유권자들의 배타적 이익에만 눈을 돌려 표를 구걸하는 정치고, 윤 대통령이 수시로 비판하는 '포퓰리즘'이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공매도 금지, 대주주 주식양도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을 내던지듯 발표했다. 모두 정부 부처와의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대통령실이 주도한 정책이며, 하나같이 '돈이 돈을 버는' 일을 응원하는 조치였다. 노골적으로 부자들의 편을 들었던 이명박 정부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윤 대통령의 관심사는 오직 총선인 듯하다. 하지만 국민경제엔 골병이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