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폭격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이 레바논과 홍해 등 중동 지역으로 확산될 위험이 매우 높아 국제 정세가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군사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미국의 군 통수권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방장관과 국방부 부장관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를 정리한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를 소개한다.
미국 국방부가 요즘 매우 바쁘다. 우크라이나에 절실히 필요한 원조 패키지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상황에 부닥쳐 운명이 불확실하고, 가자지구 전쟁이 레바논으로 확산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또 미 해군은 홍해에서 적대적인 함선을 폭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방장관이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국방부도 모르게 며칠 동안 사라지기에 특히 민망한 시기였다.
지난 3년 동안 바이든의 국방장관을 지내온 건장하고 무뚝뚝한 퇴역 장군 로이드 오스틴은 지난 12월 22일 미상의 이유로 수술을 받고 다음 날 퇴원했다가 1월 1일 심한 통증으로 메릴랜드의 월터리드 국립 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5일간 활동을 못 한 오스틴 국방장관은 1월 5일 저녁에야 병상에서 업무를 재개했다. 본 기사가 발행된 8일 현재도 오스틴 국방장관은 여전히 입원 중이다.
장관이 병가를 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문제는 오스틴 국방장관이 사라진 과정이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과 군 통수권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1월 4일이 돼서야 오스틴의 첫 입원과 수술 사실뿐만 아니라 오스틴이 두 번째 입원으로 여전히 병원에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게다가 국방장관 권한대행을 맡아야 했을 캐서린 힉스 부장관조차 같은 날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힉스 부장관은 당시 푸에르토리코 휴가 중이었는데 1월 2일 휴가지에서 장관의 업무 일부를 맡으라는 연락만 받았다가, 4일 장관의 입원 사실을 알고는 다음날 귀국하기로 했는데 그마저도 지키지 않고 늦춰서 1월 6일 귀국한 것이다.
다른 국방부 관계자들의 대응도 비슷했다. 대통령의 최고 군사고문인 찰스 브라운 합참의장도 1월 2일에 장관의 입원 사실을 알게 됐지만 백악관에 알리지 않았다. 국방부를 감독하고 국방부 예산을 통제하는 의회 지도자는 육군, 해군 및 공군의 최고 장성과 같은 날인 1월 5일에야 상황을 파악했다. 장관실을 비롯한 국방부의 관계자 대부분도 그때까지 소식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국방장관은 미국 정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의 공식적인 군사 지휘체계는 대통령에서 국방장관, 그리고 국방장관에서 특정 지역을 담당하는 여러 지휘관으로 이어진다. 국방장관은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공군 및 미사일 위협의 처리 등 대통령으로부터 위임받은 일부 권한도 행사한다. 또한 핵 발사에 대한 유일한 법적 권한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핵 발사 상황이 되면 대통령은 보안 전화 회의를 통해 국방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상의한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다른 관료가 이를 수행할 수도 있지만) 국방장관은 대통령이 핵 명령을 내렸음을 확인해 주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오스틴 국방장관의 입원은 유난히 혼란한 시기에 이뤄졌다. 미국은 1월 3일 13개의 동맹국과 공동 성명을 발표해 홍해의 후티 반군에 대해 군사적 조치가 가능함을 시사했고, 하루 뒤에는 이라크 주둔 미군이 이라크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 지도자를 공습했다. (CNN은 당시 오스틴 장관이 그 과정을 추적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미 국방부의 해명은 석연찮다. 미 국방부는 국방장관의 비서실장인 켈리 매그세만도 아픈 상태였기 때문에 힉스 부장관과 설리번 백악관 국안안보보좌관에게 1월 4일까지 보고를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국방장관은 주변에 수많은 직원을 두고 있다. 또한 이는 오스틴 장관이 왜 몇몇 동료에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 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번 불통 사건에 수많은 사람이 의아해 하고 분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 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의 건강은 세심하게 추적되고 공개된다. 2021년 11월 바이든 대통령의 대장 내시경도, 2022년 6월 메릭 갈랜드 장관의 전립선 수술도 사전에 공개됐다.
미 국방부 출입 기자단은 국방부 고위 관료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오스틴 국방장관이 자기 상태를 사전에 언론에 알리지 않은 것은 ‘분개할 일’이라고 단언했다. 이들은 오스틴 국방장관이 사생활 보호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며 국민은 내각 구성원이 언제 입원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 하원 군사위원회의 지도부는 초당적 성명에서 오스틴 장관이 건강상의 문제의 내용과 그것이 늦게 통보된 이유 등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을 최대한 빨리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스틴 국방장관은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울 정도로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1월 6일 성명에 포함된 사과는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그는 ‘투명성에 대한 언론의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내가 국민에게 정보를 보다 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었음을 인정한다. 더 잘 할 것을 약속한다’고만 했다.
오스틴 국방장관은 실패로 평가되는 바이든의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작전을 지휘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지원을 조정하기 위해 2022년 4월부터 수시로 열린 국방장관 약 50명의 회의를 주도해 왔다. 백악관은 그런 오스틴 국방장관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그의 해명에 더 많은 구멍이 뚫린다면 오스틴 국방 장관의 입지는 더 흔들릴 것이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세계 최대이자 세계 최강인 군대가 메릴랜드의 한 병원 침상에서 지휘받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