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태원 참사 특별법도 거부권 행사할 텐가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이태원참사특별법)이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될 전망이다. 18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서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는 예고된 일이었다. 특별법이 통과되자마자 대통령실은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데 대해 유감”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협상 자체를 거부한 것이 여당인데 ‘여야 합의가 없어서’ 유감이라는 대통령실의 입장은 유체 이탈에 가까웠다. 이런 식으로 대통령실이 유감을 표명하고 여당이 대통령실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거부권 행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인상이 역력하다.

윤 원내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특별법을 처리함에 있어서 여야가 합의 처리해 온 관행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야당을 공격했다. 긴 시간 동안 합의할 수 있는 기회도, 서로 양보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했지만 그 모든 것을 물려온 것이 어느 쪽인지 국민이 보아왔는데 ‘합의 불발’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관행’을 운운하는 것은 염치없다.

그동안 쌓여온 ‘관행’이 있다면 적어도 특별법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국민적 공분이 있고 여론이 명확한 사안이 생겼을 때 최소한 여론의 눈치를 보는 시늉은 해왔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의 특별법 반대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국민적 여론마저 대놓고 모른척하는 처사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여야 합의 처리에 가장 절실했던 사람들은 유족들이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예견됐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때가 있고 지금도 시간이 많이 지났다. 국민의힘의 건의를 받아들여 윤석열 대통령이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시간은 무한정 더 지체될 수밖에 없다. 자칫 진상규명 자체를 흐지부지 만들 수도 있는 일이며, 유족들의 가슴에 다시 한번 깊은 한을 새기는 일이다.

윤 원내대표는 “특조위 구성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안,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안을 가지고 재협상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여태까지 뭐 하다가 이제 와서 재협상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법안이 발의된 이후 협상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패스트트랙 이후에도 5개월이 지났다.

“야당이 총선을 앞두고 정쟁화의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는 윤 원내대표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여당이 협조했으면 이미 오래전에 특별법에 따라 조사가 이루어졌을 일이고, 그 전에 당국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를 내놓고 책임을 졌으면 애초에 특별법까지 가지 않을 일이었다. 총선 직전에 이르러서 다시 참사의 아픈 기억을 정치쟁점으로 만든 것은 지금까지 시간을 끌고 거부권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정부 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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