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출범 한 달 만에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국민의힘 주류 인사들간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일요일인 21일 여권 주류 인사들이 대통령실의 의중을 담아 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당의 공천 과정이 한 위원장의 ‘개인정치용 사천(私薦)’이라는 입장도 전달했다고 한다. 이날 저녁 한 위원장이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긴급하게 입장을 밝힌 것은 사실관계 자체는 인정한다는 의미다. 한편으로 자신을 끌어내려고 해도 자리를 지키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권력집단 내부에서 총선을 불과 3개월 앞두고 여권 내부의 혼란과 분열상을 국민들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국회의원 0선인 정치초년생에게 총선을 진두지휘할 비대위원장이라는 막대한 권한이 주어질 때부터 상당한 진통은 예상됐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단순히 공천 갈등으로만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표면적으로 이 사건이 드러난 것은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을 서울마포을 지역구에 사실상 전략공천할 뜻을 내비친 것이 발단이다. 이미 영남과 중진 인사에 대한 대규모 물갈이가 예고된 공천룰도 제기됐고, 컷오프 여론조사 등 당내 공천 일정이 시작되니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목해 봐야할 것은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 사건에 대해서 직접 사과할 것을 요구한 여권 내 최초 인사라는 점이다. 여권내 누구도 하지 못한 말, 즉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김 비대위원 발언 이후 총선 영입인사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도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김 여사의 사과 필요성을 언급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한 위원장이 발탁한 인사들이다. 이어 한 위원장도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다소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입만 열면 ‘법치와 상식’을 강조하던 한 위원장으로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으로 김 여사 모녀가 23억 수익을 냈다는 것을 검찰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난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보수 지지자들 내에서조차 김건희 특검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압도적이라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음은 분명하다.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 사퇴 요구에 힘을 실어줬다면, 아마도 한 위원장과 국민의힘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읽힌다. 즉 김 여사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 여사 사안이 여권 내부의 혼란과 분열을 촉발시킨 뇌관이 된 모양새다. 다가올 총선은 윤 대통령 임기 중 마지막 전국선거이기도하다. 총선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식물대통령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여당 내부에 팽배하다. 그만큼 여권 내부의 혼란상과 분열상은 누구 하나 비참한 결말을 볼 때까지 지속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