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태원 참사 유가족 피눈물 저울질 대상으로 삼는 윤석열 대통령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22일 오후 1시59분부터 23일 오전 9시까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공포하라며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서 밤새 2만4000배를 올렸다. 원래 희생자 숫자인 159에 맞추어 100배씩, 1만5900배 철야행동을 예정했던 유가족들이 계획보다 훨씬 많은 절을 올린 것이다.

유가족들이 체감온도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날씨에 절을 올린 이유는 23일 정기 국무회의에 특별법 재의요구권이 상정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해 19일 정부로 이송됐다. 국회를 통과한 법은 정보로 이송된 후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재의를 요구하게 돼 있다. 국민의힘은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고 윤석열 대통령에 요구하기로 의원총회에서 의견을 모았고, 대통령실은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을 정하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한다.

참사 발생 3년째로 접어드는 지금까지 정부는 지독할 정도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에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 지난한 수사 과정이 이런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검찰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기소 여부를 미루고 미루다 수사심의위까지 열어 외부위원들이 기소 권고를 하고 나서야 그를 기소했다. 특별법은 진상을 밝히고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되었다.

윤 대통령은 벌써 8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이 행사될 때마다 정당성은 매우 희박했다.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혐의를 수사하는 특검법을 거부하는 데서는 권력을 사유화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거부권은 법률안이 위헌이거나 국익에 반하는 등의 사유가 있을 때 행사될 수 있다.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의 진상을 밝히자는 특벌법을 거부할 그 어떤 명분이 있는지 의문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면서 “총선에서 정쟁화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했다고 한다. 유가족들의 입장을 대폭 양보해 국민의힘 요구를 받아들인 특별법이 무슨 정쟁화를 위한 의도인가.

대통령실이 진짜 거부권 행사를 정해놓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면 유가족들을 피 말려 죽이는 짓이다. 정부로 특별법이 이송된 날 유가족들은 삭발을 하며 특별법 공포를 촉구했으나, 여당은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국무총리실에서 23일 국무회의에 해당 안건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달됐지만 절을 멈출 수는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행태는 무슨 일을 벌여도 상상을 초월해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열흘을 유가족들은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떨면서 보내야 한다. 이들의 떨리는 마음까지 저울질의 대상으로 삼는 윤 대통령의 비정함은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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