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단내나는 삶] 차별을 멈춰라-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미룰 이유 없다

민주노총, 생명안전행동 등 노동사회단체 회원들과 정의당, 진보당, 녹색당, 노동당 등이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연장을 폐기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2.27 ⓒ민중의소리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그렇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법 적용을 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지난 1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2년간 유예했던 50인 미만의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을 다시 유예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이유는 중소기업의 현실적 여건을 감안할 때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하여 기업의 존립이 위협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체 중대재해 사망자 가운데 6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데 이 처참한 죽음을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므로 지난 2년 동안 50인 미만의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준비했어야 할 행정부의 수장이 법 적용 유예를 요청한 것은 지극히 친기업적 발상이고 노동자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비인간적인 실망스런 처사이다. 노동자들의 목숨을 내 놓는 희생으로 존립하는 기업은 없어져야 한다.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처참한 죽음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어 마침내 2022년 1월 27일자로 실행되었다. 그러나 그 법의 존재를 비웃듯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중대재해처벌법은 있었지만, 철저히 무시되었고 거부되었다. 먼저 정부의 법 적용 거부는 늦은 수사, 낮은 기소율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2022년 3월 21일 발생한 동국제강 하청 노동자 고 이동우 산재사망 사건에 대해서 검찰은 사건 발생 10개월이 지났어도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에서 “동국제강의 실질적인 경영책임자를 수사해 기소하라”며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하기도 했다.

기업들도 이 법을 무시했다. 법을 집행하는 정부부터 이 법을 무시했으니 기업들은 산업현장에서 안전사고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들도 산업재해를 방치했다. 디엘이엔씨(구 대림산업, e편한세상 시공사)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건들이 단적인 예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약 1년 반 동안 디엘이엔씨가 원청인 사업장에서 일곱 건의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해서 8명의 노동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건설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유족들,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24일 서울 종로구 디엘이앤씨 본사 앞에서 재벌은 법도 국회도 무시하며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도 되는가!- 이해욱・허영인 대기업 총수 국감 불출석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0.24 ⓒ민중의소리

정부와 기업만이 이 법의 존재를 비웃는 게 아니다. 사법부 역시 산업재해의 책임이 있는 사용자에 대해서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지난해 12월 7일 대법원은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 산재사망 사건의 책임과 관련해 원청업체인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 대해서 무죄를 확정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러니 사용자들은 재해를 막기 위해서 비용을 지출하는 것보다 재해가 발생해도 사법부가 선고하는 낮은 형량이 훨씬 적은 비용이라고 판단하여 산업재해를 방치한다. 그래서 하루에 일곱 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이렇듯 국가의 공적 기관들이 사전에 서로 말이라도 맞춘 듯 제도적으로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한국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노동혐오와 차별에서 비롯된다. 우리 사회는 위계서열을 바탕으로 한 권위주의가 판치는 사회이다. 권위주의란 높은 수준의 권위와 낮은 수준의 권위가 있다고 믿으며, 낮은 수준의 권위를 가진 낮은 지위의 사람들에게 높은 수준의 권위를 의심 없이 수용하고 존중하도록 굴종을 강요한다. 우리는 이 권위의 높고 낮음이 나이에 따른 서열로, 고참 순으로, 남녀 순으로, 지위 순으로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노동자를 위계서열상 제일 낮다고 본다. 그래서 노동의 가치는 무시되고 노동자는 차별을 당한다. 나는 이런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은 인격적으로 동등하며 차등이 없다. 우리가 속한 모든 조직과 공동체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지위를 가지고 조직과 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한다. 이 지위의 높고 낮음은 조직을 위한 책임의 정도와 비례한다. 책임의 정도가 많을수록 높은 지위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하기에 더 많은 고민을 하며 조직과 공동체 운영이 임해야 한다. 그가 받을 수 있는 특혜 또는 보상이란 조금 더 많은 임금일 수 있고, 타인들로부터 받는 존경일 것이다. 그러나 지위의 차이로 인하여 인격적으로 차등이 있는 대우를 받았다면 이는 차별이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이기 때문에 위험한 노동조건에 노출되는 것이 차별이다.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 참석자들이 2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2023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기자회견에서 산재사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를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행 고용노동부가 개인정보 침해, 법인 명예훼손, 피의사실 공표 등의 이유로 '살인기업'의 명단 공개를 거부해 2023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23.04.27 ⓒ민중의소리

권위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 다만 권위가 있는지 없는지가 드러날 뿐이다. 각자의 지위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올바로 잘 지고 그 지위에 걸맞은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권위가 드러난다. 그래서 그는 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책임지지 않고 지위에 합당한 역할을 하지 않는 사람은 권위를 잃게 된다. 권위를 잃어버리면 권력이 작동하지 않아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가 권위를 잃어버려 아무 일도 못 한 아주 좋은 예이다.

누군가의 일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목숨을 보호하지 않는 것은 노동자들의 일을 하찮게 평가하는 것이고 이는 노동자와 노동자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삶의 풍요로움을 제공받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자와 그들의 노동에 감사해야 한다. 이런 감사의 마음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을 높게 평가하고 노동자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미루면 안 된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들과 그들의 노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처벌법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노동이 없으면 삶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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