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을 함께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피해 상인을 위로하고 요청사항을 수렴하기보다 자신들이 화해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돌아갔다. 결국 상인들이 울부짖으며 분노를 토했고, 이를 본 국민들도 황당함과 불쾌감을 참기 어려운 지경이다.
애초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다른 시간에 서천시장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랬다면 당국의 브리핑을 받고 피해상인들을 만나 건의를 듣는 통상적 방문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함께 방문하는 것으로 갑자기 바뀌었고, 먼저 도착한 한 위원장이 기다리기까지 했다. 명품백 수수로 물의를 빚은 김건희 여사 문제를 두고 비상대책위원장 사퇴론이 오갈 만큼 충돌한 직후여서 두 사람의 만남에 시선이 집중됐다. ‘폴더’ 인사를 하며 밝은 표정으로 악수한 한 위원장과 어깨를 두드리며 반가움을 표시한 윤 대통령 모습이 방송으로 중계됐다. 현장에 20여분 머문 두 사람은 대통령 전용열차로 함께 귀경하며 훈훈한 ‘브로맨스’의 정점을 찍었다.
윤 대통령 측은 방문일정 조정 외에도 이날 만남에 화해 메시지를 적극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청록색 민방위복 대신 청색 패딩을 입었다. 이 옷은 7년 전 두 사람이 특검팀에서 함께 일할 때에도 즐겨 입던 추억의 옷이라고 한다. 굳이 공식 민방위복 대신 입은 것은 의상에 메시지를 담는 의전 기획으로 볼 수 있다.
자신들의 화해에 집중한 탓인지 정작 피해 상인들은 만나지도 않았다. 화재 현장을 야외에서 살피고 브리핑을 받은 윤 대통령이 건물 1층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눌 때 곁에는 상인들이 없었다. 대통령실과 정부 관계자, 여당 및 지역 정치인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경호에 막혀 있던 상인회장만 간신히 대통령 옆으로 이동이 허용됐고, 윤 대통령의 간단한 ‘적극 지원’ 언급 이후 방문 행사가 끝났다. 상인회장은 윤 대통령이 ‘10초’ 만난 뒤 떠났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200여명의 상인들은 당국의 안내에 따라 건물 2층에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대기 중이었는데 대통령 일행이 떠난 뒤에야 내려왔다. 재난 피해 국민을 정치기획에 소품으로 사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삶의 터전인 상가 227개가 전소된 현장, 시커멓게 탄 건물 앞에서 피해 상인을 위로하기보다 이미지 연출에 몰두하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라니. 국민들은 참담하고 어이없다. 9년 전 ‘잠바’를 챙겨 입을 관심과 정성의 몇 분의 일만 쏟아도 이런 비정하고 무례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관악구 반지하 수해 사망 사건을 카드뉴스로 만들고, 오송참사에도 “당장 서울로 가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 방문을 강행하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국민의 아픔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득이 중요한 이들에게 누가 주권자를 대리할 자격을 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