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음의 저울] 스마트한 지배에 대해

연초부터 소셜 네트워크 지면에 이재명 대표의 살인미수 사건, 서천시장의 대형 화재 사건, 중동전쟁 등 수많은 사건 사고로 채워지고 있다.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힌다. 요즘 시대에 어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아찔하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사건은 또 다른 사건으로 덥히고 하루가 멀다 하게 자극적인 뉴스로 지면이 덥힌다. 문제의 본질은 뒷전인 채 스마트한 지배에 제한된 정보와 자료에 의존하여 어느 입장을 선택하고 공유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정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정보과잉 사회에서는 테러나 살인사건도 그저 한 줄의 기사나 데이터로 존재한다. 그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다면 엄청난 충격과 트라우마 속에 빠질 텐데도 자신마저도 데이터로 전락시키는 무정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건을 파헤치려고 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치부되거나 법정 소송이나 위협에 시달리기도 한다. 잠시 한눈을 팔면 새롭게 공급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한 장면에 자신도 모르게 클릭하며 시간을 보낸다. 언제부터 우리는 본질적 삶과는 거리를 둔 채 빅마우스가 툭툭 던지는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 것일까. 현학적 논리에 방향을 잃어버리고 우연성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폭풍우나 날벼락이 자신에게는 안 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바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과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이재명 대표의 살인미수 사건이나 중동전쟁과 같이 우리 삶에 깊숙이 연관된 사건은 아득히 먼일처럼 여겨진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일반 대중이 바란 것은 법치주의와 공정성이었을 것이다. 법치주의란 전제군주가 자의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강탈하는 것을 제약하기 위해 국민의 대표가 제정한 ‘법의 지배(rule of law)’를 관철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2년 가까이 윤석열 정권의 모습은 어떠한가.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시행령으로 고쳐 쓰거나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조법, 방송 관련 3법과 쌍특검 등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거부권을 남발하며 스스로 전제군주라도 된 양 권력을 마음대로 쓰고 있다. 대형 화재 현장에서 재난 대응이 중요하다면서 재난관련 연구개발비를 90%가량 삭감하고, 경제가 중요하다면서 미일 종속 외교를 통해 경제를 고립시키고 있다. 공정성의 이미지 또한 부인 김건희 씨의 수많은 탈법과 비리에서 무너진 지 오래다. 이제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조차 통제하고 겁박하려는지 수많은 심사 규제 조항을 만들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서천 화재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분명한 것은 선거를 통해
우리들의 희망, 통합, 존엄성, 진실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형 화재로 점포 227개가 전소된 충남 서천특화시장을 찾아 피해자를 외면한 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정치적인 쇼를 연출하는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장면에서 과연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지난 2년여를 정부 책임자로서 보수세력을 동원해 타깃을 지정해 여론몰이식 편 가르기를 통해 상대를 악마화하고 근거 없는 혐오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정치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그들 집권 내내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수많은 언론이 가세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상대를 악마화한 것이 스마트한 지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올해는 이렇게 무도하고 무정한 권력에 대해 국민이 심판할 수 있는 총선을 앞두고 있다. 모든 선거가 그렇듯이 선거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입장에서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오고 국민을 위해 권력을 복무해야 하며 국민의 이익에 우선시해야 함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다양한 정파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고 변화할 것처럼 색깔을 뿜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선거를 통해 우리들의 희망, 통합, 존엄성, 진실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는 것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에게 반칙이나 정당성은 애초부터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칙이나 정당성을 갖지 못한 야합에 의한 승리는 또 다른 분쟁을 예고하는 것이기에 과정에서의 정당성에 관심을 두어야 주권재민의 정신을 실현하는 장이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은 저자의 생각에서 나온다. 정치도 하나의 이야기라면, 어떤 결말을 만들어야 할까? 지난 과거의 잘못에 대한 심판의 이야기, 앞으로 다가올 희망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라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면, 정치인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실현할 배우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떤 정치인들은 자신이 주인인 줄 알고 착각하며 권력에 도취가 되어 헤매고 있다면 우리의 이야기의 장에서 당연히 퇴출시켜야만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것이다. 낙담하고 무력함이 압도하는 시대라 해도 역사는 늘 그렇듯이 전진하고 있으며 씨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새 역사의 힘을 만들어 나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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