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저명한 저술가이자 탈핵 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 선생이 2016년 10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선생은 바쁜 일정을 쪼개어 경주까지 찾아와 강연을 했다. 탈핵운동에 입문할 때 선생의 ‘원전을 멈춰라’를 두어 번 읽고 주변에 권했던 인연으로 선생의 경주 방문이 특별했다. 경주 지진으로 어수선할 때 선생은 지진과 핵발전 위험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었다.
새해 벽두부터 일본 이시카와현 노트반도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해다. 진앙에서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시카 핵발전소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가 출렁이며 냉각수 421리터가 쏟아졌고, 변압기의 배관이 파손되어 23,400리터의 기름이 변압기의 배관이 파손되어 23,400리터의 기름이 누출됐다. 또한 발전소 부지 내에 땅이 갈라지거나 내려앉은 곳도 나타났다. 다행히 시카 핵발전소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모두 가동이 정지된 상태다.
이 지진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우리나라 동해안 묵호항에서 최고 0.85미터 높이의 지진해일이 밀려왔고, 경북 문경에서 측정한 지하수는 최대 1미터가량 출렁였다. 우려스러운 마음에 선생의 강의록을 다시 살피니, 직하형 지진의 공포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었다. 직하형 지진은 내륙 얕은 곳에서 발생하는 지진으로 상하 진동이 특징이다.
직하형 지진이 발생하면 땅이 꺼지거나 양쪽으로 갈라지기 때문에 핵발전소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2016년 4월의 구마모토 지진 때는 땅이 1.5미터 내려앉고, 3미터 찢어졌다. 2008년 6월 이와테-미야기현 지진 때는 2킬로미터 사방이 함몰되어 산이 통째로 사라지는 대붕괴가 발생했다. 이렇듯 지반이 붕괴되면 핵발전소의 내진성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선생은 경주 지진도 직하형 지진이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경주 지진 이후 우리 정부에서 발간한 ‘9.12지진 백서’도 직하형 지진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진은 내륙 직하형 지진이 대부분이므로 산사태 피해 우려가 큼” 또한 “일본(서남부지역)에서 규모 7.0 이상의 지진 발생 후 약 2년 뒤 한반도에 규모 5.0 정도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 있는 것으로 분석한 사례도 있다.”고 나온다. 정부 백서가 정확하다면 2026년 무렵에 한반도는 또 한 번 땅이 크게 흔들릴 것이다. 아니길 빈다.
사실 연초부터 지진에 눈길이 쏠린 것은 작년 12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발표한 ‘월성원전 삼중수소 최종 조사 결과’ 보고서 때문이다. 보고서는 월성핵발전소 지반을 시추한 사진과 함께 “전반적으로 절리가 발달하고 RQD 값이 낮음”이라고 지반 상태를 기술하고 있다. RQD(Rock Quality Designation, 암질지수)는 1~5등급으로 분류하고, 등급이 높을수록 단단한 지반이다.
월성핵발전소의 낮은 RQD 값은 지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절리가 발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시추 사진은 이를 잘 보여준다. 암반이 너덜너덜하게 깨어진 시추 사진이 일반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이곳이 핵발전소 부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처럼 너덜너덜한 암반이 지진을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부에서 발간한 ‘9.12지진 백서’에 답이 있다.
‘9.12지진 백서’를 보면, 경주 지진 진앙에서 약 8킬로미터 떨어진 울산 관측소에서 최대 0.4g의 충격이 관측됐고, 약 7킬로미터 떨어진 명계리 관측소에서 최대 0.28g의 충격이 관측됐다. “울산 관측소가 명계리 관측소보다 진앙에서 먼 거리에 있지만 관측소가 위치한 지반 특성에 따라 진동의 증폭”이 일어났다. 앰프가 전기 신호를 증폭시키듯 불량 지반은 지진파를 증폭시킨다는 설명이다. 월성핵발전소의 낮은 RQD 값도 지진파를 증폭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참고로 월성핵발전소는 0.2g의 충격을 견디도록 설계됐다. 정부는 규모 6.5의 지진에서 0.2g의 충격이 발생한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2016년 9월 12일 경주 지진은 규모 5.8이지만 0.4g와 0.28g의 충격이 이미 관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