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공인됐다.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6일 이스라엘 정부에게 가자지구에서의 대량학살(1948년 제정된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 위반)을 방지하고, 고위관료를 포함하여 개인까지도 대량학살 선동 범죄행위에 대해 기소하고 재발방지조치를 취해야한다고 판결했다. 또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물과 식량, 의료 등 기본서비스를 시급히 제공하고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결정했다.
당초 제소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청사안인 즉각적인 군사작전 중단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그 외 ‘잠정조치’ 중 일부가 수용된 결과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다. 기본서비스 제공을 위해선 휴전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에 대해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비록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으나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음은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즉각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이) ICJ의 지워지지 않는 수치가 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모든 인질 구출, 이스라엘 위협제거, 절대적인 승리를 위한 전쟁 지속’을 천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1일 열린 청문회를 앞두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마스와 싸우고 있고 사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ICJ 재판관 17명 중 15명이 네타냐후의 이런 진술이 거짓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ICJ의 기본 기능은 회부된 사건에 대해 국제법에 근거하여 판결하는 것이다. ‘무엇이 국제법인가’에 대한 ICJ의 판단은 국제사회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따라서 이번 판결로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는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게 됐다. 심지어 이스라엘 내 네타냐후 총리의 입지도 크게 약화할 전망이다. 판결 내용이 유엔 안보리로 넘어올 경우 미국도 거부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게 됐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의 국제적 지위도 추락하는 양상이다. 오만함과 잔혹성을 드러내온 이스라엘의 국제적 고립은 이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