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태원특별법 거부, 아이 낳지 말라는 유가족의 절규

예상대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아홉 번째다. 그러나 그 어느 법보다 행사하지 말았어야 할 거부권이다. 159명이 생떼 같은 목숨을 잃고, 유가족이 1년 반을 거리에서 절규하며 만든 이태원참사특별법에 끝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로써 수차례 했다던 대통령의 사과는 모두 헛말이었음이 드러났다.

30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 건의를 의결하며 한덕수 총리는 “수사 결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명확한 근거도 없이 추가적인 조사를 위한 특조위를 설치하는 것이 과연 희생자와 유가족, 국민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고민했다”고 말했지만 이 말을 믿을 국민은 거의 없다.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은 물론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도 거부권 행사의 이유는 달리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국회 협상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요구는 여당을 통해 상당 부분 반영됐다. 진상조사는 4월 총선 이후에 하고, 특검 등 수사와 기소 절차는 조사 이후에 판단하기로 했다. 참사의 원인과 각 기관 대처의 적절성을 면밀하게 조사하기 위해 유가족은 모든 것을 양보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훌쩍 지났는데 법안 통과 이후에도 조사를 몇 달 미루는 것에 유가족은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었지만 물러섰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법안에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여당은 국회의장 중재를 박차고 본회의에서 퇴장했다. 여당은 총선에 끼칠 영향에 신경을 썼지만, 대통령실은 조사를 받아들일 의사가 조금도 없었다. 특별법 찬성 여론이 훨씬 많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감추는 자가 범인이라는 격언이 떠오를 지경이다.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며 땅바닥에 몸을 던지고 삭발을 하며 유가족들은 호소했다. 그리고 한 엄마는 “오늘 출산정책 내놓는다 하더군요. 아이 낳지 마십시오. 새끼 키우고 살 수 없는 나라입니다”라고 울부짖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조금의 위로도, 양보도 베풀지 않고, 이해득실의 잣대만 대는 비정하고 패륜적인 정치를 목도하고 있다.

묻고 싶다. 과연 문명국 중에 이런 참사에 독립적인 기관의 조사를 실시하지 않는 나라가 있나. 유가족의 요구에 앞서 정부가 나서서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할 일은 처벌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을 강구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검경의 수사와 책임 추궁이 충분하다고 믿는 국민이 적은 지금 우리는 더욱 당연하다. 이번 거부권은 후진적 정치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는 진실규명 요구에 금전 지원을 꺼내들면서 유가족을 지원을 더 받아내기 위해 떼쓰는 이들로 전락시켰다. 포털사이트와 언론사 SNS마다 돈 문제를 언급하며 유가족을 조롱하는 반응이 넘쳐나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 벌어진 일과 똑같다. 즉, 충분히 예상된 일이다. 정부의 태도는 유가족을 향한 혐오를 촉발하고 부채질하고 있다. 가족 잃은 슬픔, 특히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안은 유가족을 혐오 대상으로 삼아 정치적 반대급부를 챙기는 악질적 정치를 끝내야 한다. 이태원특별법은 반드시 재의결 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총선에서 거대한 심판이 이뤄져야 한다. 22대 국회는 거부권을 넘어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입법하는 국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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