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태경의 토지와 자유] ‘실거주 의무’ 3년 유예는 민주당의 자살골

‘실거주 의무제’는 분양가상한제와 켤레를 이루는 투기방지대책

여야가 분양가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적용 시점을 3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도 나온 만큼 실거주 의무 적용 시점 유예안은 근거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거주 의무제 폐지 법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명하던 민주당이 전향(?)적인 태도로 바뀐 이유는 임박한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변신은 더 많은 표를 잃을 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에 투기꾼들이 활개 칠 공간을 열어주는 최악의 패착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어리석은 선택을 중단해야 마땅하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대표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24년도 예산에 대한 합의사항을 발표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12.20. ⓒ뉴스1


‘실거주 의무’ 3년 유예에 접근하는 여야?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실거주 의무 폐지를 추진하자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실거주 의무 적용 시점을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가능일로부터 3년 이내’로 완화하는 방안을 여당인 국민의 힘에 제안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3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은 실거주 의무 무조건 폐지를 주장하는 정부·여당과는 달리 원칙과 현실의 적합성을 모두 고려한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실수요자를 보호하지 않고 투기의 문을 열어준다는 비판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또한 원내 관계자는 “3년 유예를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2월 임시국회 중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히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3년 유예 제안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실거주 의무제의 도입취지와 존재 이유를 살펴봐야

실거주 의무제를 폐지하느니 유예하느니 하는 논란보다 선행되어야 할 건 실거주 의무제가 도대체 왜 도입됐는가이다. 주지하다시피 실거주 의무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에 당첨된 사람이 최초 입주 가능 시점에서 2~5년간 직접 거주하도록 한 규정이다. 이를 어길 시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주목할 대목은 실거주 의무제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공동주택에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공동주택은 당연히 주변 시세보다 현저히 저렴하다. 하여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공동주택에 당첨되는 순간 최초 수분양자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

이럴 때 관건은 분양가상한제 적용 공동주택의 속성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세차익이 가급적 투기꾼이나 다주택자가 아닌 무주택 실거주자에게 귀속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분양가상한제 적용 공동주택에 분양권 전매제한기간을 설정하고 실거주 의무제가 결합하는 건 너무나 당연할 일이다. 쉽게 말해 분양가상한제와 분양권 전매제한기간과 실거주 의무제는 하나의 세트인 것이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공동주택이 아니라면 굳이 분양권 전매제한기간을 두고 실거주 의무를 부과할 까닭이 없다. 이렇게 실거주 의무제의 도입 취지와 존재 이유를 생각해보면 여야 사이에서 실거주 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거나 유예해야 한다는 논쟁이 얼마나 허황하고 터무니없는 것인 줄 알게 된다.

민주당이 실거주 의무제에 대해 양보하는 건
4만 7천표 얻자고 수천만의 무주택자 표 버리는 꼴


기실 지금의 실거주 의무제 논란은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초 대량의 미분양 위기에 처한 둔촌주공을 구하기 위해 실거주 의무제 폐지를 천명하면서 불거진 일이다. 책임이 전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는 모두 무주택 실소유자들을 걱정해 주는 척을 하고 있는데, 둔촌주공 등의 실거주 의무가 있는 공동주택에 실제로 거주할 의사가 있는 무주택실거주자들은 실거주를 전제로 계획을 세운 터라 아무 문제가 없다.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순전히 투기 목적으로 둔촌주공 등의 일반분양 물량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이다. 이들은 실거주 의사가 전혀 없기에 실거주 의무제 폐지를 애면글면 애걸 중이다. 도대체 민주당이 이들의 처지를 왜 근심해주는지 알 길이 없다.

주택 아파트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실거주 의무제에 걸린 공동주택 가구 수가 4만 7천호가량 된다고 한다. 아마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이들의 표를 의식하는 듯 싶다. 민주당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설사 민주당이 실거주 의무제에 대해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4만 7천호가 민주당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은 낮다. 이들은 민주당으로부터 실거주 의무제에 대한 양보를 얻어낸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할 것이다. 민주당은 4만 7천호로부터 표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전체 유권자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무주택자들로부터도 적지 않은 표를 잃을 확률이 높다. 무주택자들은 민주당이 투기꾼들의 편의를 봐주고 주택시장을 교란하는데 협력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민주당이 실거주 의무제를 양보해서 얻을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민주당은 실거주 의무제 폐지를 주문처럼 외우는 레거시미디어들의 주술(呪術)에 세뇌당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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