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총선을 목전에 두고 다시 ‘서울 편입론’을 꺼냈다. 이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취임 후부터 중점 추진해 온 ‘경기 분도’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하지만 경기도 일부 지자체가 서울로 편입될 경우, 비대해진 경기도를 나누는 분도의 의미가 퇴색되고 추진 동력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편입론을 띄우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당초 국민의힘은 김기현 대표 체제였던 지난해 10월 ‘경기북부’ 편입에 반대한 경기 김포시장의 주장을 받아서 김포를 비롯한 서울 인접 도시의 서울 편입을 추진해 왔다.
당시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충분한 검토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탓에 여당 소속 지자체장조차 “정치공학적인 포퓰리즘”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했을 정도였다. 이후 지도부가 바뀌고, 논의를 촉발시킨 김포시의 총선 전 서울 편입 주민투표도 사실상 무산되면서 결국 서울 편입은 흐지부지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한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서울 편입 이슈를 재소환하면서 다시 불을 붙였다. 한 비대위원장은 “주민의 뜻을 존중해서” 서울 편입도, 경기 분도도 모두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지난 3일엔 서울 편입 대상이었던 김포를 찾아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서울 편입을 바라는 지역주민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한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추진했던 서울 편입과 민주당이 경기 분도를 함께 추진하는 정책을 ‘발상의 전환’이라고 자평했으나,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 뒤따른다.
‘경기 분도’는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위해 김동연 지사가 당선 직후부터 추진해 온 역점 사업이다. 경기도에서 분리돼 독립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새로운 광역자치단체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설치해, 남부 지역에 비해 낙후된 북부 지역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북부 지역은 접경 지역이면서 수도권에 속해 있다 보니 각종 규제가 중첩돼 상대적으로 저발전 지역으로 머물러 있다. 도시 인프라 역시 경기 남부에 집중되다 보니 경기 북부의 주민들의 불편도 큰 상황이다. 경기도가 발표한 경기북부특별자치도에 포함되는 지역은 의정부시ㆍ고양시ㆍ포천시ㆍ파주시ㆍ동두천시ㆍ구리시ㆍ남양주시ㆍ양주시ㆍ가평군ㆍ연천군 등 10곳이다.
경기도는 오는 2026년 7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출범을 목표로 두고, 관련 절차를 밟아오던 중이었다. 2022년 조직 개편을 통해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추진단을 설치했고, 조례 제정 및 설명회와 정책 토론회, 권역별 숙의 토론회, 정책연구용역 등을 진행해 왔다.
이제 남은 단계는 주민투표 정도다. 경기도는 지난해 9월 행정안전부에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주민투표를 요청했으나 5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민투표를 결정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보수성향의 포럼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김동연 지사께서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건의를 해오셨는데, 주민투표를 하려면 500억원 이상의 큰돈이 든다”며 “경기남북도를 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인정됐을 때 주민투표를 실시해야지 초반부터 투표를 실시하고 나중에 검토해 봤더니 합리적이지 않다고 했을 때는 500~600억원을 날리게 되는 것”이라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편 바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경기 분도 추진에 대해 “진정성이 없다”고 일축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김 지사는 5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동북권 공공의료원 설립’ 기자회견 후 한 비대위원장의 주장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행정 개편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투자해야 되는 것인지 알고 하는 얘기인지 모르겠다”며 “그런 생각이 있었더라면, 9월에 총리와 중앙정부에 주민투표를 요청했을 적에 받아서 같이 했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도지사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와 서울시 메가 편입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경기도를 한 편에서는 쪼그라트리고, 한편에서는 나누고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경기도 관계자도 같은 날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경기 북부에 있는 도시들이 서울로 편입되고, 나머지 시들만 가지고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만드는 건 추진 동력과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경기북부 인구가 360만명이고 이중 고양시가 120만명이고, 남양주시가 80만명이다. 경기 남·북부에 있는 수백만명의 인구가 서울로 넘어가면 분도를 하겠다는 저희의 목표와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도 통화에서 “한 비대위원장 주장은 경기도를 남북으로도 나누고, 서울로도 일부가 가면 경기도를 사실상 삼등분하자는 것이다. 경기도 일부 도시를 일부 서울로 편입하면, 경기도를 다시 두 개로 나눌 필요가 무엇이겠나”라며 “서울에 인접한 지역들도 편입 요구를 하면 더 이상 나눌 경기도가 남아있지 않게 돼 서울의 흡수 통합 전략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추진하려면 야당과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며 “득표 전략 외에 정책으로서는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최 소장은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 더 국가적인 문제인데, 수도권 문제에만 집중해서 사회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것 자체도 문제”라고 질타했다.
‘서울 편입’과 ‘경기 분도’ 동시 추진에 대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비판했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서울 시민들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가 여러 지역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정책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이 대표는 “이해 당사자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일방인 김포 주민의 주민투표만으로 추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서울시민에 대한 주민투표 실시 의사가 없다면 이번 메가 서울-경기북도 분도 동시 추진 발상은 그저 가는 동네마다 그 지역에서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주는 ‘팔도 사나이식’ 정치의 사례일 뿐”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