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연구만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절대 이곳으로 안 왔을 거예요. 제가 현장의 연구자로 인공위성을 만들고,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게 24년째거든요.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 저는 이 일을 매우 사랑해요. 앞으로 할 계획·프로젝트도 많았고, 지금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많아요. 제가 (정치권에 입문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훨씬 더 멀리 갈 인공위성을 설계하고 있었을 거예요.”
지난달 31일, 국회 인근 한 카페에서 황정아(46)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을 만났다.
정확하게는 황 연구원이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생 등과 만나는 자리에 기자가 요구해 ‘꼽사리’ 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양성해 온 교수이기도 해서 그런지, 학생들과의 자리는 유쾌하고 즐거워 보였다. 학생들과의 대화 자체를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황정아 책임연구원은 소위 ‘인공위성을 만드는 물리학자’로 불린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위성 1호의 우주물리 탑재체 개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3차 발사에 탑재된 ‘도요샛’ 개발, 한국 최초 ‘정찰위성 425 위성사업’ 자문위원 참여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수행 중인 과제도, ‘항공 방사선량 분석 시스템’(미국 특허) 등 국내외 특허도 여러 개다. 한 대학교수는 그를 “우주방사선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박사”라고 말했다. 2016년에는 포항공대와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발표하는 ‘한국을 빛낼 젊은 과학자 30인’에도 포함됐다. 그는 자기 일을 “사랑”하며 현업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유망한 과학자였다. 그런 그가 최근 사랑하던 일을 중단하고, 정치권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다.
무엇이 사랑하던 일을 중단하게끔 한 것일까.
“대한민국 과학기술 붕괴 직전” “연구만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안 왔다”
더불어민주당은 1월 8일 ‘영입인재 6호’로 황 책임연구원을 영입했다.
그는 이날 민주당 인재영입 행사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과학자, 연구자들이 겪고 있는 무력감, 자괴감을 뼈저리게 느낀다”며 “더는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이 후퇴하게 둘 수 없다는 위기감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진행된 R&D 예산 삭감을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이 붕괴하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래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과학자들에게 이런 처우를 하는 정부는 없었다”며 “과학은 백년대계다. 백년 계획에 걸맞은 비전을 가지고 투자·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종 부자감세 정책을 내놓던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0조원이라는 역대급 세수 ‘펑크’를 일으켰다. 그러더니 윤석열 대통령은 느닷없이 과학계에 “R&D 나눠먹기”가 있다면서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예고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33년 만에 처음으로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예산안(2023년 31조1천억원→2024년 25조9천억원, 5조2천억원 삭감)을 국회에 제출했다. 역대 정부는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과학계 R&D 예산은 백년대계로 보고 항상 투자를 늘려왔다. 심지어 IMF와 금융위기 때도 늘렸다.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수조원 규모의 삭감은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6천억원을 복원했지만, 그래도 4조원이 넘는 규모의 예산 삭감은 현장에 큰 타격을 줬다.
이날 황 책임연구원과 함께 만난 학생들과 대학교수 등에 따르면, R&D 예산 삭감 여파로 상당수의 연구비가 삭감되었고 심지어 연구과제 자체가 사라지는 곳도 많다. 이에 연구실에서 신입을 안 뽑기 시작했고,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도 없어지고 있어서, 연구실·대학원에서 사람의 고리가 끊길 분위기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 과학기술에 관한 일인데도, 조용하다. 국가 R&D 예산 자체가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연구자라면 정부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예산 삭감으로 연구가 중단된다 하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당초 정부가 국가 R&D 예산을 삭감하기로 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라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황 천문연구원이 지난해 민주당의 영입제안을 받고 두 달의 숙고 끝에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였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지금 연구하기가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연구자의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힘들어졌다. 연구현장에서 원래 일을 잘하던 사람들도 예산이 기본적으로 20~30% 또는 50~60% 삭감되고, 아예 없어진 과제도 많다.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런데, 현장의 목소리를 위까지 전달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고, 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 R&D 예산삭감의 의미를 잘 모른다. 그래서 이 일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사람이 국회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과학계 상당수 인사가 민주당에 황 책임연구원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A 대학 교수는 황 책임연구원처럼 동료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과학적인 업적이 있으면서 정치인으로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학계에서 찾기 힘들다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NASA가 제안한 ‘유인 달 탐사’ 참여 무산
윤석열 정부가 과학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아르테미스 2호’ 참여 제안 거절 논란에서도 드러난다.
아르테미스 2호는 미국의 유인 탈 탐사 프로젝트의 한 단계로, 사람을 NASA의 우주선 ‘오리온’에 태우고 달의 궤도를 돌고 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후 NASA는 달 착륙을 목표로 한 아르테미스 3호를 추진한다. 황 책임연구원은 한 칼럼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우주 탐사 시대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달이 목표가 아니라 달을 딛고 화성에 닿고자 하는 것”이라고 아르테미스 미션의 의미를 설명했다.
NASA가 우리나라에 제안한 내용은 아르테미스 2호 우주선(오리온)에 우리나라가 개발한 탑재체와 큐브위성을 탑재하는 것이었다. 도전적이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이었고, 과기부도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NASA 측에 11월 1일 참여의향서를 제출했다.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구해 탑재체 및 큐브위성 개발비 70억원만 마련하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 70억원을 마련하지 못했다. 정부는 “국회 심의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반영되지 못했다”며 마치 국회에서 예산을 편성해주지 않은 것처럼 설명했지만, 이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거짓해명이었다. 민중의소리 취재결과, 정부는 70억원 예산편성 심의를 국회에 제대로 요구하지도 않았다. 상임위 예산심사 과정에서부터 관련 의견을 제시하고 예산편성의 필요성을 얘기해야 했지만, 상임위 예산심사가 진행된 11월 1일부터 14일까지의 예산심사회의에서 아르테미스 2호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최소한 R&D 예산 복원에 의지가 있던 야당을 찾아가야 했지만, 야당 측은 당시 해당 사업에 대해 과기부로부터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A 대학 관련 학부 교수는 “과기부 입장에서는 열심히 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지금 정부 분위기에서는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산 증액에 적극적인 야당에라도 찾아갔다가 큰일 날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아르테미스 2호 참여는 무산됐다.
우리가 잃은 것
만약 우리나라가 아르테미스 2호 참여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면, ‘지구에서 달까지 우주방사선’ 그리고 ‘달의 궤도를 돌면서 고도별 우주방사선’을 측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황 책임연구원은 말했다. 그는 “유일무이한 데이터가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주는 지구와 환경이 다르다. 공기와 중력만 없는 게 아니라, 모든 생명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계까지 위협하는 ‘우주방사선’이 존재한다. 특히, 반도체는 우주방사선에 취약하다. 방사선은 머나먼 우주에서 오기도 하고, 태양에서 나오기도 한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이 이 우주방사선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이유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자기장 덕분이다. 그래서 우주로 나가기 전 지구와 다른 우주의 환경을 이해하려면, 우주방사선에 관한 데이터 확보가 필수다. 한 번만 측정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 되도록 여러 번 반복해서 측정해야 한다. 데이터 원본을 다른 나라로부터 공유받기도 힘들다. 만약 이 데이터를 확보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다른 나라보다 선제적으로 그 역량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황 책임연구원은 설명했다.
또 이번에 참여가 무산되면서, 우리 민간기업들은 ‘나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우주산업은 진입 장벽이 높다. 특히 우주로 나갈 기회 자체가 흔치 않기 때문에 ‘스페이스 헤리티지’(Space Heritage)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스페이스 헤리티지’란 우주로 내보낸 경험을 의미한다. A 대학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우주선에) 나사 하나라고 집어넣고 싶을 것”이라고 그 절실함을 표현했다. 황 책임연구원은 “업계에서는 ‘스페이스 헤리티지’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여하게 됐다면) 아르테미스에 참여하는 다른 나라와 조율도 해야 하고, 국제협력이 자연스럽게 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정말 소중하다. 달에 뭔가를 보내보는 경험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굉장히 소중하다. 많은 기관이, 국가기관도 그런 경험이 별로 없고, 회사들은 더 없다. 이 돈으로 뭘 남겨보고자 하는 게 아니다. (함께 위성과 사람을 달에 보내기 위해) 개발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그 과정 자체가 우리의 자산이 될 거였다. 그 자산이 쌓여야 더 큰 미션으로 갈 수 있다.”
학생들이 보기에도, 이는 충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우주항공 분야 유관 학과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의 공동의장인 조현서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생은 “한국에서 독자 기술로 달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능력을 빌리거나 다른 나라와 협업을 해야 하는데, 공무원들의 행정절차로 인해서 (그 기회가) 날아갔다? 그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동행동 공동의장 문성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학생도 “우리나라가 ‘다누리’라고 달 탐사선을 보내긴 했는데, 그것도 우리나라 자체기술로 보낸 것도 아니고, 그에 비하면 큐브위성이라고 하더라도 달에 위성을 보내는데 70억원이면 상당히 효율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며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