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 위로 화려한 호스트들이 등장한다. 무대 한가운데 원형의 단상 위로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키키’가 등장했다. 키키는 자신을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라고 소개하며 변증법적 치료를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바로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의 시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되어 지난 1월 27일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는 이 작품은 ‘경계성 인격장애’란 조금 낯선 소재를 다루고 있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자기상, 정서, 대인관계가 매우 불안정하고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한 인격장애’를 의미한다. 불안정한 대인관계, 만성적 공허감과 불안감, 반복적인 우울감 등을 증상으로 하는 성격장애 중 가장 발병 빈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이 작품의 작가이자 기획, 연출을 맡은 조윤지 연출은 실제 본인이 겪고 있는 인격장애를 소재로, 연극 ‘윤지는 오늘도 자기를 싫어한다’를 지난 2018년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과 인격장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를 직접 제작하게 되었다고 알려졌다.
경계성 인격장애 환우 ‘키키’의 이야기
주인공 키키는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기까지 과정과, 병으로 매 순간 좌절했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그 과정의 이야기는 키키와 무대 호스트들이 맡는다. 9명의 배우들은 6개 이상의 배역, 총 30여 개의 역할을 소화하며 키키의 이야기 속 인물이 된다. 20대부터 50대까지 배우들이 모두 등장하며 등장인물들의 성별, 세대를 넘나들며 연기를 펼친다. 이 작품은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고 감동을 만들어 내는데 배우들의 역할이 무척 컸다.
키키는 오랜 연인과 반복되는 이별 끝에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상담사 에단을 만나면서 자신의 병을 공부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된다. 새로운 일을 찾고 새로운 연인을 만나 사랑을 시작하지만 키키의 하루하루는 너무 불완전하고 위태롭기만 하다.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 엄마와 관계도 여전히 삐걱댄다. 성격장애 환우들과 모임에서도 겉도는 자신을 발견한다.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불안하고 포기하고 싶은 키키에게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키키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서 시작된다. 경계성 인격장애로 자해를 한 키키의 팔을 보고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준 새로운 연인에게서. 키키의 실수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직장 사람들의 말에서. 인간은 누구나 모든 감정을 다 느낄 수 있다는 상담사의 말에서.
한 사람의 경험담을 넘어 이제는 함께 고민해 볼 이야기
키키는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며 조금씩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치료한 지 3년이 된 키키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엄마는 키키의 병을 인정하게 되었을까? 키키는 직장을 뛰쳐나오지 않고 여전히 일하고 있을까? 연인에게 버림받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고 사랑을 계속하고 있을까? 키키는 어떤 모습으로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나게 될까?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2022년 8월에 발간한 ‘2022 국민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 결과 보고서’에서는 1년 동안 국민의 3명 가운데 2명(63.9%)가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했으며, 경험자의 58%가 이로 인해 ‘일상생활 및 가정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정신건강을 드러내는 것은 편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경험을 무대 위로 올리는 작업을 한 작가이자 연출가인 조윤지 연출의 도전은 박수받을 만하다.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초연과 동시에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었던 뮤지컬 ‘실비아, 살다’를 제작했던 공연제작소 작작의 신작이다. 게다가 극작과 연출의 조윤지, 작곡에 김승민, 무대 디자인에 송지인 등 뮤지컬 ‘실비아, 살다’를 올린 제작진이 다시 뭉쳐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배우 이수정과 이휘종이 주인공 키키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키키’의 부모 역할을 담당할 ‘베스 외’ 역에 대한민국의 대표 뮤지컬 배우 남경주가 출연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2월 25일까지 한 달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CKL스테이지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공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전 회차 휠체어석과 휠체어 안내 동선이 준비되며, 일부 회차에 수어 통역과 사전 대본 열람, 터치 투어가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