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과학기술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나와 대통령의 시공간은 다른 걸까

이토록 과학 경시하는 나라, 참 을씨년스럽다

아폴로 15호는 1971년 NASA의 아폴로 계획에 의해 발사된 유인우주선이다. 이 사진은 조종사 제임스 어윈이 촬영한 두 장의 사진을 결합한 것으로, 사령관 데이비드 스콧이 몸을 기울여 드릴을 내려놓고 있다. ⓒNASA

기초과학의 중요성에 대해 말할 때, 종종 인용되는 일화가 있다.

영국의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고위 정치인들에게 시연해야 했는데, 이를 본 고위 정치인들의 첫 마디는 “이게 무슨 소용이냐?”였다고 한다. 패러데이가 시연한 것은 전기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인류문명 발전의 근간이 된 전자기 유도 원리였다. 이때 패러데이가 내놓은 대답은 “갓 태어난 아기가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였다. (▶네이처에 소개된 패러데이 일화)

물론 영국의 고위 정치인들이 바보는 아니었다. 영국은 패러데이가 발견한 원리의 가치를 분명히 알았다. 신자유주의로 사회 양극화를 촉진시킨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는 1988년 9월 27일 왕립학회 연설에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패러데이의 사례를 언급한다. “첫째, 기초과학은 엄청난 경제적 보상을 가져올 수 있지만, 완전히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서, (경제적) 보상은 즉각적인 결과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늘날 패러데이의 업적을 보면, 그 가치는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주식을 전부 현금화한 것보다 훨씬 값이 나간다.” (▶마거릿 대처의 왕립학회 연설문)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예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굳이 사례를 나열하지 않아도, 기름 한 방울도 안 나는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은 과학에 대한 투자만큼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진보·보수할 것 없이 꾸준히 국가 연구개발(R&D)에 투자를 늘려온 이유다.

그런데, 만약 영국이 “이게 무슨 소용이냐?”면서 전자기 유도 원리를 발견하기 직전 패러데이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연구는 성과 없이 끝났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2024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중단된, 사라진 연구가 얼마나 많은지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실태조사 발표 같은 게 없으니, 상당히 많다는 연구자들의 얘기만 듣고 어렴풋이 추정할 뿐이다. 예산 삭감으로 연구실에서 신입을 뽑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 과학자의 길을 걸으려던 청년들이 진로를 바꾼다는 얘기도 들린다. 심지어 최근에는 정부가 70억원의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바람에, NASA가 제안한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 참여가 무산돼 논란이다. 달을 탐사할 수 있는 기회, 달의 궤도까지 가서 우주의 환경을 관찰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민소 기사 ① : NASA 달 탐사 공동참여 무산, 정부는 상임위에 예산 보고도 안 했다) (▶민소 기사 ② : ‘인공위성 만드는 물리학자’가 청춘 바친 연구실 떠나는 이유)

한 명의 과학자가 양성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과학에 대한 투자와 기다림에 인색하지 않다’는 신뢰와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소한 정권이 바뀌어도 지원과 투자가 갑자기 중단되는 일만큼은 없어야만 가능한 얘기다. 이번 정부의 R&D 예산 삭감은, 역대 정부가 그간 쌓은 신뢰와 문화를 뒤흔드는 일처럼 보인다. 이번 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연구와 새로운 발견의 기회를 윤석열 정부의 사람들은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연구가 사라지거나 축소됐어도 사실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그게 어떤 가치가 있는 연구인지 당사자 말고 국민은 알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취업준비하느라 정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세세한 관심을 두기 어렵다. 정부의 지원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반발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러니 손쉬운 먹잇감 정도로 생각한 것일까. 이는 기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취재 중 만난 한 과학도에게 들은 우려다. 실제 국내 최고대학이란 곳에서도 ‘NASA의 달 탐사 참여 무산 논란’에 대해 관심 갖는 과학도가 많지 않다고 한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너무 큰 불행이다. 단순히 정권이 바뀌어서 문제가 아니라, 무관심으로 과학을 이같이 치부해도 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침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미래를 준비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KBS ‘특별 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한 이 말에 놀랐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나와 대통령이 사는 시공간이 다른 것일까. “우리나라가 하는 건 과학자가 필요한 게 아니다. 과학은 저쪽 서양에서 열심히 해서 올려놓은 보고서 읽으면 벌써 과학자다”라는 유튜버 천공의 말과 2021년 10월 6일 TV토론 직후 윤석열 당시 후보가 대뜸 “정법(천공)은 그런 사람 아니다. 정법 유튜브를 보라. 정법은 따르는 사람이 많다”고 항의했다는 유승민 전 의원 측의 말이 오버랩 돼, 잠이 안 오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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