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여의도 사투리’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말 비대위원장에 추대된 직후 "여의도 사투리가 아닌 5000만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말한 바 있다. 어떤 '사투리'를 쓰는가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익숙해진 화법을 쓰는 건 그 자체로는 비난받거나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다만 한 위원장이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겠다"고 한 건 정치권 특유의 논점 흐리기나 정쟁으로 모든 이슈를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여겨졌다.

그런 점에서 한 위원장의 6일 관훈토론회 발언은 실망스럽다. 한 위원장은 세간의 관심이 쏠린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의혹'에 대해서 "국민들께서 걱정할만한 부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걱정'이 아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한다는 말인가. 국민들은 화가 나거나 어이없어 하고 있고, 김 여사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피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에 분개한다. 그런데 한 위원장은 이걸 "걱정할만한 부분"이라고 피해갔다. 전형적인 여의도 화법이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비대위원장을 사퇴하라고 요구한 일에 대해서도 "일도양단으로 말할 것은 아니고, 소통이 지금 잘 되고 있고, 할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사퇴 요구에 대해 거절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는 "일도양단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 역시 여의도 사투리가 아닌가.

한 위원장의 '여의도식' 답변은 계속됐다. 한 위원장은 "검사 독재 청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검사 독재가 있었다면 이재명 대표는 지금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대표를 감옥에 보내려한 것은 한 위원장이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가장 역점에 둔 사업이었다. 그런 당사자가 이렇게 말한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한 위원장은 이 대표의 통합형 비례정당 창당 추진을 민주당 의총에서 추인한 것에 대해서도 "얼마 전 북한에서도 99점 몇퍼센트 나왔던데, 100%라니 북한인가"라며 엉뚱한 비유를 들었다. 이런 식이면 매번 '만장일치'인 국무회의나 여당의 비상대책위원회는 무엇이 되나. 상대당을 비난함으로써 대답을 대신하는 정치권의 수법은 한 위원장 입에서도 반복됐다.

놀라운 것은 한 위원장이 장시간의 토론회 내내 이렇다할 정책은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집권 2년차에 치러지는 총선에서 야당은 정권에 대한 비판을, 여당은 자신의 주요 정책에 대해 지지를 호소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한 위원장은 마치 자신이 야당을 이끌고 있는 양 상대당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했다. 이 정도면 수십 년 정치를 했던 사람들이 도리어 고개를 숙이는 게 맞을 것이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