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설을 맞아 명절 시리즈로 ‘세계 최악의 기업들’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현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 세계 민중들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친 악랄한 기업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될 예정입니다. 이번 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네 개의 기업이 소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최악의 분식회계, 미국을 뒤흔들다 _ 엔론 ② 누가 그 많은 아프리카의 아기들을 죽였나? _ 네슬레 ③ 콜럼바인의 고교생들은 어떻게 총기를 난사할 수 있었나? _ 미국총기협회 ④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은 그들의 책임이었다 _ 도쿄전력
1970년 남미 칠레에서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08~1973)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특이하게도 그의 원래 직업은 소아과 의사였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어린이들의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칠레는 그다지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다. 특히 유아기 어린이들의 영양실조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옌데는 난국을 돌파할 수단을 우유에서 찾았다. 소아과 의사 출신답게 그는 단백질과 지방, 칼슘과 비타민이 고루 함유된 우유가 어린이들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칠레 국민들이 충분한 분유와 우유를 살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옌데는 이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려 했다. 15세 이하의 모든 칠레 국민에게 매일 하루 0.5리터의 분유와 우유를 무료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아옌데의 이 정책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이 정책에 결사반대한 막강한 세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세력은 바로 당시 중남미에서 우유와 분유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던 식품기업 네슬레였다.
네슬레는 단 한 잔의 우유도 칠레 정부에 팔 수 없다고 버텼다. 정부가 우유를 무상으로 나눠주면 자신들이 그동안 챙겨왔던 막대한 이익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네슬레는 미국과 유럽 강대국의 정부에 로비를 벌여 아옌데 정권을 압박했다. 실제 미국은 아옌데의 개혁을 막기 위해 갖은 경제 제재를 동원해 칠레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당시 칠레의 가장 큰 돈벌이 수단은 광산에서 채굴한 구리를 수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구리를 모조리 풀어 구리 가격을 폭락시켰고 이 때문에 칠레는 경제적으로 큰 곤란을 겪었다.
결국 아옌데는 1973년 군사 반란에 의해 정권을 빼앗겼다. 그는 반란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직접 총을 들고 항전했지만 반란군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목숨을 잃었다(아옌데가 최후의 순간 자살을 했다는 설도 있다).
이때 반란군을 강력하게 후원한 곳이 미국 중앙정보국(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이었다. 당시 반란군의 수장이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는 미국의 후원에 힘입어 칠레의 새 대통령에 올랐다. 이후 그는 17년 동안 무자비한 독재를 펼쳐 칠레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기억된다.
세계 최대 식품기업이 사람을 죽인다고?
이 사건에 등장하는 네슬레는 세계적인 식품기업이다. 1866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네슬레는 분유와 이유식, 우유 등 유제품과 시리얼, 커피, 과자 등을 판매한다. 그런데 “우유나 파는 기업이 크면 얼마나 크겠어?”라고 얕잡아봐서는 곤란하다.
기업의 크기를 평가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준이 시가총액이다. 시가총액이란 쉽게 말해 그 기업의 주식을 모조리 사들이려면 얼마가 필요한지를 계산한 수치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시가총액이 100조 원이라면, 100조 원을 내면 그 회사의 주식 100%를 살 수 있고 그 회사의 완벽한 주인이 될 수 있다.
네슬레의 시가총액은 무려 360조 원에 육박한다. 세계적인 음료 기업 코카콜라와 시가총액이 비슷하다. 우리나라 최대 자동차 재벌인 현대차와 기아차 두 회사의 시가총액을 합쳐도 100조 원에 못 미친다. 네슬레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다.
그런데 유아와 어린이의 건강을 위한 제품을 주로 파는 네슬레는 뜻밖에도 아이들이 죽는 일에 매우 무관심하다. 아니, 무관심한 것을 넘어 아이들이 죽는 것을 방조하거나 조장하기도 한다. 아옌데의 개혁을 좌초시켜 칠레의 어린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2021년 2월 네슬레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농장에서 어린이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일을 묵인한 혐의로 미국 법원에 고소를 당했다. 그 코코아 농장에는 16세 미만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보호복도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의 효율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온 몸에 살충제와 제초제를 바르고 고된 노동에 내몰렸다. 그 어린이들이 목숨을 걸고 수확한 코코아는 네슬레의 초콜릿 원료로 사용됐다. 어린이의 건강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어린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아프리카에 눈독을 들인 네슬레
출생율은 그 사회의 거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사회가 풍요롭고 살기 좋을수록 출생율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 말은, 반대로 사회가 험악하고 살기 어려워질수록 출생율이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의 출생율을 봐도 이런 경향은 매우 뚜렷하다.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National Center for Health Statistics)에 따르면 1920년대 여성 1,000명 당 신생아 숫자는 120명에 육박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40년 이 숫자가 80명 이하로 떨어졌다. 전쟁이 벌어지면서 사람들이 아이를 낳기 꺼려한 것이다.
이 숫자는 전쟁 직후인 1946년부터 폭증해 1950년대 다시 120명을 뚫었다. 이때 태어난 사람들을 베이비부머 세대(baby boom generation)라고 부른다. 1946년부터 1967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숫자는 현재 미국 인구의 30%에 육박한다. 전쟁 후 희망을 발견한 미국인들이 다시 아이를 낳기 시작한 덕분이다. 게다가 이 시기 미국 경제는 대번영기라 불릴 만큼 호황이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이 숫자는 다시 80명 이하로 폭락했다. 석유파동으로 미국 경제가 흔들렸고,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대번영기가 마무리되며 본격적인 불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때 폭락한 출생율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이 바로 네슬레였다. 네슬레의 주력 제품이 분유였기 때문이다. 네슬레는 부쩍 줄어든 분유 판매량을 늘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때 네슬레가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아프리카였다.
네슬레는 본격적으로 아프리카에 분유를 팔기 위해 무료 분유 샘플을 아프리카 전역에 뿌려댔다. “유럽의 건강하고 통통한 아기들은 모두 모유 대신 분유를 먹는다.”는 광고와 함께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에 찌들었던 아프리카 엄마들은 네슬레가 나눠주는 공짜 분유 샘플을 덥석 받아 아기들에게 먹였다.
그런데 이게 바로 비극의 시작이었다. 분유를 먹은 아기들이 설사와 구토 등 배앓이를 하면서 죽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분유는 기본적으로 젖병을 통해 먹이는 것이다. 그리고 위생을 위해 반드시 젖병을 소독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아프리카에는 젖병을 소독할 주방 시설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물도 안 끓이고 마시는 판에 젖병을 어떻게 소독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네슬레가 무료 판촉을 중단한 다음부터 시작됐다. 엄마의 젖은 아이가 정기적으로 빨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 이 말은, 분유를 한 번 먹이면 무조건 계속 분유를 먹여야지 분유를 먹이다가 모유로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네슬레가 무료 분유 샘플을 막 뿌리고 다닌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한 번 분유를 입에 대면 절대 분유를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프리카의 엄마들 중 상당수는 분유 값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모유를 먹이려 해도 이미 젖은 말라 버렸다.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마른 젖을 억지로 아기들에게 물리거나, 분유에 턱없이 많은 물을 타서 먹였다. 제대로 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아기들이 영양실조로 죽어나갔다. 네슬레는 분유를 팔았지만, 그 대가로 아프리카의 엄마들은 아기를 잃어야만 했다.
엄마들, ‘더 베이비 킬러’ 네슬레와 맞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과 유럽의 뜻있는 엄마들이 네슬레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업의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라지만, 분유를 먹일 처지가 안 되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량으로 공짜 분유를 풀어 이런 비극을 초래하는 일까지 참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1974년 영국 시민 단체 ‘빈곤과의 투쟁(War on Want)’은 <누가 아기를 죽이는가?>라는 소책자를 통해 네슬레의 악행을 고발했다. 독일의 시민단체 제3세계행동그룹(Third World Action Group)도 <네슬레가 아기들을 죽이고 있다>라는 문서를 발표했다.
1977년 미국의 엄마들은 국제어린이식품행동(IBFA, International Baby Food Action)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인 저항에 나섰다. 네슬레의 만행에 저항하는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급기야 국제네슬레보이콧위원회(International Nestle Boycott Committee)라는 단체까지 생겼다. 이들은 분유뿐 아니라 네슬레가 만든 모든 제품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젖병에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그려 넣은 포스터를 제작한 뒤 그 위에 “더 베이비 킬러(The Baby Killer)”라는 문구를 적었다. 네슬레의 분유 판촉이 아기들을 죽이는 행위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뜨거운 연대의 물결은 결국 거대 공룡 기업 네슬레의 무릎을 꿇렸다. 네슬레는 사태 초반 “젖병을 소독 안 하고 먹이는 비위생적 행동까지 우리가 어떻게 책임지라는 말이냐?”라며 버텼지만,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불매운동을 견디지 못했다.
1984년 네슬레는 결국 “더 이상 빈곤국가에서 공격적인 분유 마케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뜻 있는 엄마들의 연대가 ‘더 베이비 킬러’ 네슬레를 굴복시킨 것이다.
네슬레 불매 운동은 아기들의 생명까지 볼모로 잡고 이윤을 추구했던 거대 식품 기업의 추악한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용맹스런 소비자들의 연대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도 확인시켰다.
기업은 이렇듯 이윤을 위해 때로는 인륜을 거스를 정도의 만행을 저지르곤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은 단 한 가지, 바로 소비자들이 뜨거운 연대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