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의 고교생들은 어떻게 총기를 난사할 수 있었나? _ 미국총기협회

[연재] 설 연휴에 만나는 세계 최악의 기업들 ③

*편집자 주 - 설을 맞아 명절 시리즈로 ‘세계 최악의 기업들’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현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 세계 민중들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친 악랄한 기업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될 예정입니다. 이번 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네 개의 기업이 소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최악의 분식회계, 미국을 뒤흔들다 _ 엔론
② 누가 그 많은 아프리카의 아기들을 죽였나? _ 네슬레
③ 콜럼바인의 고교생들은 어떻게 총기를 난사할 수 있었나? _ 미국총기협회
④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은 그들의 책임이었다 _ 도쿄전력

독자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가 폭주를 하고 있다. 그런데 선로 위에는 다섯 명이 일을 하는 중이다. 열차를 멈출 수 없다면 이 다섯 명은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신 앞에 스위치가 있다. 스위치를 누르면 갈림길에서 열차의 진행 방향이 바뀐다. 문제는 바뀐 선로 위에도 한 명이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당신이 스위치를 누르면 기존의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지지만, 애초 죽지 않았어도 될 한 사람이 죽는다.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짐작컨대 많은 분들이 스위치를 누르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다섯 명이 죽는 것보다 한 명이 죽는 것이 더 나으니까. 실제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마크 하우저(Marc Hauser) 교수가 2007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가 선로를 바꾸는 선택을 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질문을 조금 바꿔보겠다. 상황은 아까와 비슷하다. 폭주하는 열차를 멈추지 못하면 다섯 명이 죽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앞에 스위치가 있는 게 아니라 생면부지의 한 사람이 있다. 열차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을 선로로 밀어 열차에 치여 죽게 하는 것뿐이다. 사람을 친 열차는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그 덕분에 멀리서 일을 하던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이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번에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망설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하우저 박사의 설문에서도 이 질문에서 “한 사람을 죽이고 다섯 명을 살리겠다.”고 답한 사람이 11%밖에 되지 않는다. 똑같이 ‘한 명을 살리고 다섯 명을 죽이느냐, 다섯 명을 살리고 한 명을 죽이느냐?’는 선택인데, 사람들의 선택은 이렇게 달라진다. 어떨 때에는 89%가 다섯 명을 살리는 선택을 하는데, 또 어떨 때에는 89%가 반대로 그 다섯 명을 죽이는 선택을 한다.

정답이 무엇일까? 당연히 이 문제에 정답이란 없다. 유명한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릴 정도로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이 문제의 이름이 ‘트롤리(열차)의 딜레마’다.

다만 이 문제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사람마다 선택이 바뀌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람은 내 옆에서 누군가가 죽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 상황에서 선로를 바꿨을 때 죽음에 처하는 한 명은 내 옆에 있지 않다. 하지만 두 번째 상황에서는 그 죽는 한 명이 바로 내 옆에 있다. 만약 내가 그를 밀어버린다면 그 사람은 내 눈 앞에서 피가 튀고 살점이 잘린 채 목숨을 잃는다.

멀리서 누군가가 죽는 것과, 내 눈 앞에서 누군가가 죽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인간은 누군가가 옆에서 피를 튀며 죽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느낄 정도로 온정이 메마른 동물이 아니다.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

총의 발명은 인류 역사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한 죄책감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약해졌다.’는 사실을 꼽는다.

단지 총이 칼이나 창보다 사람을 더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칼로 사람을 죽이려면 직접 내 손으로 상대의 신체 어딘가를 찌르고 베어야 한다. 살아 움직이는 생선도 칼로 잘 못 찌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사람을 찌르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나?

하지만 총은 다르다. 총은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 아주 멀리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리고 내 손으로 누군가를 찌르는 섬뜩한 기분도 피할 수 있다. 죄책감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하락하는 이유다. 이게 총의 진짜 무서운 점이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의 한 평화로운 작은 마을 콜럼바인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소속 에릭 해리스(Eric Harris)와 딜런 클리볼드(Dylan Klebold) 두 학생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12명의 동료 학생과 한 명의 교사를 죽인 것이다.

물론 이후에도 미국에서는 비슷한 총기 난사 사고가 종종 일어났다. 특히 우리 뇌리에 깊이 박힌 사건은 2007년 4월 16일 벌어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Virginia Tech shooting)일 것이다. 반자동 권총을 난사해 32명을 죽인 범인이 재미교포 조승희(당시 23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승희는 당시 성인이었다. 반면 콜럼바인에서 총기를 난사한 두 고교생 중 에릭은 18세가 된지 고작 11일째 된 인물이었고, 딜런은 18세도 되지 않은 미성년자였다. 이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에릭과 딜런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학교 정문을 통과한 뒤, 잔디밭에서부터 총질을 시작했다. 놀란 학생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학교 건물로 들어선 이들은 총질을 계속했다. 학생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그들은 카페테리아로, 또 도서관으로 그들을 쫓아 총기를 난사했다. 동료 학생들이 “제발 쏘지 말아줘!”라고 애원해도 그들은 아랑곳 않았다.

이 사건은 경찰이 도착하기도 전 마무리됐다. 에릭과 딜런이 자신들의 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이 둘이 죽인 사람은 모두 13명이지만, 이 사건의 사망자가 15명으로 기록된 이유는 그 둘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사건 발생 이후 미국 사회는 도대체 왜 이들이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분석에 나섰다. 혹자는 그들이 왕따를 당했다고 분석했고, 혹자는 그들이 즐겨 들었던 폭력적인 록 음악이 사건의 원인이라고도 했다.

또 둘은 평소 게임을 즐겨 했는데, 폭력적 게임이 이들의 살인 본능을 자극했다는 추정도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4월 20일이 인류 최악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생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그들이 백인 우월주의자라는 추정도 나왔다.

그런데 아무리 이런 식으로 돌려 분석한다 한들 이 처참한 사태의 본질적 원인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고등학생 신분이었던 그 둘이 너무나 쉽게 총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헌법과 총기 소유


미국은 총기 소지와 휴대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나라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미국’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뭉친 나라가 아니었다. 그들이 영국과 소위 독립전쟁이라는 것을 벌였을 때 미국은 ‘하나의 나라’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13개로 나뉜 일종의 식민지 연합이었다.

이런 역사 때문에 미국에서는 국가가 조직한 군대가 아니라, 각 주에서 자발적으로 결성된 민병대의 파워가 어마어마했다. 독립을 쟁취한 주체가 이들 민병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독립 초기인 1791년 제정된 미국의 수정헌법 제2조에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 정부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라고 명시돼 있다. 이게 바로 미국 국민들이 자유롭게 총을 소지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다.

그런데 이 헌법 조항에는 상당한 논란의 소지가 있다. 문장 앞부분에 분명히 ‘잘 조직된 민병대’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문구에 집중할 경우 “총기는 잘 조직된 민병대만 소유할 수 있다”는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반면 문장 뒷부분, 즉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문장에 집중하면 말 그대로 온 국민이 자유롭게 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래서 대형 총기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이 대목이 늘 논란이 된다. 총기 소유를 찬성하는 쪽은 “헌법에 총기 소유의 자유가 명시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반대하는 쪽은 “그건 민병대 이야기지 일반 국민들까지 총기를 자유롭게 가져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맞선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전자가 늘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전자의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한 단체가 있다. 바로 이번 호의 주인공 전미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다.

가장 강력한 로비 단체

NRA는 무려 55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그리고 수많은 총기 제조 기업으로부터 어마어마한 후원금을 받는 단체다. 기업은 아니지만 기업의 이익을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하기에 ‘최악의 기업’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그들을 절대 제외할 수 없다.

또 NRA는 미국 정치인들에게 가장 많은 후원을 하는 최대의 로비 단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 NRA는 1994년 선거 때 국회의원 후보 276명에게 정치자금을 대 이 가운데 211명을 당선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전미총기협회 로고 ⓒ전미총기협회

이런 위력 덕에 NRA는 <포춘>이 선정한 ‘국회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로비 단체’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또 2012년 조사에 따르면 보수적인 공화당 국회의원 중 88%가 NRA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민주당 의원은 11%). 2016년 이들이 정치적 활동에 쓴 자금 규모는 무려 4억 1,2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4,500억 원)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뜻있는 정치인들이 총기 규제를 하려 해도 이들의 후원을 받은 정치인들의 결사반대로 규제는 번번이 실패한다. 게다가 550만 열성 회원들이 선거 때마다 “총기 규제에 찬성하면 우리는 당신 낙선 운동에 나설 것이오!”라며 협박을 하는 통에 많은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입을 닫아버린다.

NRA가 내세우는 대표적 논리가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 뭐 이런 웃기는 논리인데, 굳이 풀이하자면 “총이 아니어도 살인을 할 사람은 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사실,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사실이 있다.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죄책감을 어마어마하게 덜어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총을 손에 쥔 사람은 칼을 손에 쥔 사람보다 훨씬 쉽게 사람을 죽인다.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에도 관대해진다. 칼로 내 배를 찌르는 것보다 총으로 내 머리를 쏘는 일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매년 3만 명 이상이 총기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코로나가 창궐한 2020년 한 해 동안에는 무려 4만 4,000명이 총기 사고로 죽었다.

이런 사회를 조장해놓고도 NRA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이들이 존재하는 한 매일 평균 120명이 총에 맞아 죽는 비정상적인 미국 사회의 변화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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