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은 그들의 책임이었다 _ 도쿄전력

[연재] 설 연휴에 만나는 세계 최악의 기업들 ④

*편집자 주 - 설을 맞아 명절 시리즈로 ‘세계 최악의 기업들’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현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 세계 민중들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친 악랄한 기업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될 예정입니다. 이번 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네 개의 기업이 소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최악의 분식회계, 미국을 뒤흔들다 _ 엔론
② 누가 그 많은 아프리카의 아기들을 죽였나? _ 네슬레
③ 콜럼바인의 고교생들은 어떻게 총기를 난사할 수 있었나? _ 미국총기협회
④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은 그들의 책임이었다 _ 도쿄전력

일본의 논객 아즈마 히로키(東浩紀)는 과거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를 관광지로 만들자.”는 독특한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가 어디인가? 2011년 사고를 일으켜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누출됐던 곳이다. 1986년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와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곳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 끔찍한 사고 장소를 ‘관광지’로 만들자니 이 무슨 황당한 주장인가? 하지만 히로키가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본인들이 핵발전소 사고를 망각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히로키는 “핵발전소 사고를 재현하는 놀이기구를 만들자. 그렇게 해서라도 당시 사고를 기억해야 한다. 설혹 사람들이 그 놀이기구를 타면서 ‘이거 죽이는데!’라며 환호성을 지르더라도, 사고를 잊는 것보다는 훨씬 낮다.”고 질타했다.

이 사례를 자신의 책 <우리의 민주주의거든>에서 소개한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高橋源一郞)는 “일본인은 ‘잊어버리기’의 달인이다. 전쟁이나 비참한 공해의 재앙도 우리는 일단 지나버리면 일상생활 속에서 어느덧 잊어버리고 만다.”고 한탄했다.

그런데 나는 겐이치로의 이 한탄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인류가 비슷한 망각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뇌는 매우 낙관적이다. 인간은 낙관하기에 모험을 한다. 숱한 실패를 겪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라고 믿는다.

이런 낙관주의 덕에 인류는 도전과 성취를 계속하고(물론 실패는 그 보다 훨씬 많이 했지만) 역사의 진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미국 럿거스 대학교 인류학과 라이오넬 타이거(Lionel Tiger) 교수가 “인간이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낙관적인 환상 덕분”이라고 단언한 이유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가 낙관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피해야 할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 바로 ‘실패의 기억’이다. 고통스런 실패의 기억이 뇌에 강하게 남아있으면 사람은 절대 낙관주의자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부족이 사냥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부족원들의 목숨만 잔뜩 잃었다고 하자. 이 기억이 뇌에 남으면 그 부족은 두려움 때문에 다음에 절대 사냥에 도전하지 못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뇌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실패의 기억, 아픈 기억을 잽싸게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신경과학자 탈리 샤롯(Tali Sharot) 칼리지런던 대학교 교수는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망각이라는 기법을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뇌가 나쁜 기억을 빨리 잊어버리려 하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잊어서는 안 될 사고들

이런 습성 탓에 일본인들은, 아니 인류는 핵발전소 참사의 아픈 기억을 자꾸 잊으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사고를 두고 “맞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로 가볍게 넘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절대 그렇게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독자 여러분들께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려드리겠다. 체르노빌에서 벌어진 그 핵발전소 사고는 무려 36년 전에 벌어졌다. 그렇다면 이 사고의 수습이 다 끝났을 것 같은가?


핵발전소 사고가 무서운 이유는 방사능이 끊임없이 유출되기 때문이다. 방사능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사고 직후 인류는 방사능 유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냉정히 말해 인류는 문제를 해결을 한 게 아니라 그 문제를 그냥 ‘덮어’버렸다. 농담이 아니다. 인류가 해법이랍시고 제시한 것이, 방사능이 유출되는 그 핵발전소를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 구조물을 만드는 공사에 무려 80만 명이 동원됐다. 이토록 많은 인원이 동원된 이유는 방사능이 워낙 위험한 탓에 현장에 노동자가 몇 초 이상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읽어주기 바란다. ‘몇 시간’이나 ‘몇 분’이 아니라 ‘몇 초’ 이상을 머무를 수 없었다. 그만큼 방사능은 위험한 물질이다.

당시 현장에서는 말 그대로 진짜 ‘몇 초’ 단위로 노동자들을 교대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노동자 중 상당수가 방사능에 노출돼 젊은 나이에 병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이 콘크리트 구조물에는 30년이라는 수명이 있었다. 그래서 2016년 이 구조물을 새로 지어야 했다. 이 말은, 사고가 난지 30년이 지나도록 인류는 아직도 방사능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전혀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새로 지어진 콘크리트 구조물의 수명은 100년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앞으로 100년 안에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인류는 또 다시 그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덧입혀야 한다. 즉 인류는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100년이라는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만약 그곳에 지진이라도 나면? 그래서 구조물이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다.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갇혀있던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또 다시 우크라이나 일대를 덮칠 것이고, 인류는 다시 한 번 거대한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래도 핵발전소 사고를 쉽게 잊을 수 있는가?

그들은 오로지 돈벌이만 신경썼다

2011년 사고를 낸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는 도쿄전력이 소유하고 관리하던 발전소였다. 그리고 당시 도쿄전력은 공기업이 아닌 민영기업이었다. 도쿄전력이 민영기업이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의 핵심 원인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민영기업의 최우선 목표는 오로지 이윤, 즉 돈벌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력사업을 한국전력공사(한전)라는 공기업이 맡는다. 그리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공기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이다. 따라서 한전은 ‘돈을 버는 것’에 최우선 가치를 두지 않는다.

반면 민영기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따라서 핵발전소를 대하는 태도도 공기업과 민영기업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공기업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반면 돈벌이를 중시하는 민영기업은 안전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조차 아끼려 한다.

2011년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사고는 그 해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한 초대형 지진에서 비롯됐다. 동일본 대지진, 혹은 도호쿠(東北) 대지진으로 불리는 그 지진이다.

핵발전소가 주로 바다를 끼고 건설되는 이유는 냉각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핵발전소는 우라늄의 핵분열로 생긴 열을 이용해 물을 끓인 뒤, 이때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때 발생하는 열이 매우 뜨거워 반드시 식혀줘야 한다. 냉각수는 바로 이 과정에서 필요한 물이다. 뜨거운 냄비를 식힐 때 차가운 물을 대야에 받아놓고 그 안에 냄비를 넣어두면 냄비가 빨리 식는 것과 같은 원리다.

도쿄전력 핵발전소 방사성 물질 오염수 저장시설을 살펴보는 기자들. 2016.03.08 ⓒ뉴시스

문제는 핵발전을 통해 발생하는 열이 엄청나 이를 식히는 데 사용되는 물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데 있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핵발전소 1기 당 사용되는 냉각수의 양은 1초에 수십 톤에서 수백 톤에 이른다. 그래서 주로 바닷가에 핵발전소를 짓는 것이다.

그런데 2011년 벌어진 대지진으로 높이 15m에 이르는 거대한 쓰나미가 핵발전소를 덮치고 말았다. 이 바람에 발전소 일부가 물에 잠겼다. 그리고 이 사고로 냉각수를 공급하는 펌프에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냉각수가 부족해지자 발전소 내부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흡사 발전소가 용광로와 비슷해졌다고나 할까? 결국 발전소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대량의 방사능이 누출됐다. 이게 바로 이 사고의 요지다.

인류에 지은 씻지 못할 죄

문제는 이 과정에서 도쿄전력이 오판을 거듭했다는 데 있다. 냉각수 펌프 작동이 중지됐을 때, 열을 식히기 위해 바닷물을 직접 퍼부어서라도 원자로를 식혔다면 문제가 해결됐을 것이다.

하지만 민영기업이었던 도쿄전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제된 냉각수가 아니라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물을 그대로 원자로에 쏟아 부을 경우 그 원자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돈을 아끼려다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도쿄전력이 지은 죄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진이 발생했는데도 발전소 노동자들이 대부분 사고 당일 퇴근해버린 것도 참사를 키운 중요한 원인이었다.

지진 직후 도쿄전력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퇴근을 할지 말지는 현장에서 알아서 판단하라.”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를 받은 현장 노동자들 대부분이 퇴근해버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노동자들 대부분이 도쿄전력 본사 소속이 아니라 외부 업체에서 파견을 나온 저임금 노동자들이었다는 대목이다. 이 또한 도쿄전력이 비용을 아끼려고 한 짓이었다.

사고 총 책임자인 도쿄전력 사장 시미즈 마사타카(淸水正孝)의 무책임한 태도도 전 세계의 분노를 자아냈다. 시미즈는 사고가 발생한지 29시간 뒤인 3월 13일, 단 한 차례 사과회견을 한 이후 잠적해버렸다. 노동자 300여 명이 현장에서 냉각 작업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동안에도 시미즈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후쿠시마를 찾은 때는 사고 발생 무려 한 달 뒤인 4월 11일이었다.

시미즈는 사고 직전해인 2010년 도쿄전력 사장에 오른 인물이었는데, 그의 별명은 ‘비용 감축의 귀재’였다. 그는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했던 민영기업 도쿄전력에 가장 적합한(!) 경영자였던 셈이다.

이 외에도 이들이 저지른 오류는 일일이 나열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았다. 결국 이 사고 이후 도쿄전력은 회생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고, 이듬해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정부 소유의 공기업으로 변신했다.

체르노빌 사고가 남긴 교훈은 “인류 역사에 핵발전소 사고는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그 알량한 돈벌이를 위해 이 끔찍한 사고를 반복하고 말았다.

사고가 발생한 지 10여 년이 지났고, 사람들은 후쿠시마 참사를 점차 잊어간다. 일본은 인간의 망각을 이용해 그 위험한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고 있다. 하지만 도쿄전력이 지은 이 끔찍한 죄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인류의 뇌가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잊으려는 본능이 있다 해도, 이 일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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