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국가안보실)이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관련 자료를 미리 입수한 뒤에 해병대 수사단 측에 해당 사실을 누설하지 말라고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민중의소리’ 취재에 따르면 국가안보실에 파견돼 있던 김형래 대령은 작년 7월 30일 저녁 해병대 수사단 유모 소령으로부터 채상병 사건 수사 결과 언론브리핑 자료 3부를 군 내부망 이메일을 통해 전달받은 뒤, 유 소령에게 “그래 수고한다. 절대 이쪽에 전달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회신했다. 유 소령이 메일로 브리핑 자료를 전달한 시간은 오후 6시 34분이었고, 김 대령이 회신한 시간은 오후 6시 45분이었다.
해당 메일이 오간 이후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오후 7시 2분부터 7시 43분까지 김형래 대령과 통화 및 문자를 네 차례 주고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이때 박 대령은 김 대령에게 안보실에 브리핑 자료를 사전에 공유한 데 대한 우려감을 표한 것으로 파악됐다.
안보실의 누설 금지 지침은 안보실-군당국 간 자료 공유와 관련해 국방부가 기존에 밝혔던 입장과 배치된다. 당초 안보실이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언론브리핑 자료를 사전에 전달받은 데 대해 수사외압 정황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국방부는 작년 8월 “외교안보부처의 경우 통상적으로 안보실과 언론설명자료를 공유하고 있어 ‘외압 소지가 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국방부 설명처럼 통상적으로 안보실과 공유해온 자료에 불과하다면, 안보실이 “절대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주문한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당 자료를 공유하는 일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안보실 김 대령은 지난 13일 이러한 경위에 관한 질문을 받고 “회의 중”이라며 답변 없이 전화를 끊은 이후 더 이상 취재진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박정훈 대령 측 변호인인 김정민 변호사는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자료라면 ‘어디다가 이야기하지 말라’고 할 까닭이 없다. 국방부 설명도 거짓말인 셈”이라며 “그만큼 안보실에서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지 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해병대 수사단이 안보실에 해당 자료를 전송한 건 애초 안보실의 거듭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해병대 수사단은 작년 7월 30일 오후 4시경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과실치사 혐의’가 포함된 수사 결과를 보고한 뒤에 결재를 받았고, 다음 날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안보실 김 대령은 이날 오후 해병대 수사단장이던 박정훈 대령에게 ‘안보실장이 보고 싶어 하는데 장관 결재본을 보내줄 수 없느냐’고 요청했고, 해병대 정책실장도 박 대령에게 ‘안보실에서 수사 결과 보고서를 보내달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령은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안된다”며 거절했다. 이후 박 대령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언론 브리핑 자료라도 보내주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해당 자료를 안보실에 전달했다. 이와 관련해 박 대령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지시 역시 거부했어야 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