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MBC가 확보한 쿠팡 블랙리스트 문건에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도 coupang 블랙리스트?’ 사이트에 접속했다. 경찰청에 출입하는 민중의소리 사회부 기자 이름은 이미 해당 블랙리스트 문건에 올라가 있었다. 경찰이 작성한 경찰청 출입기자 명단의 기재 순서와 쿠팡 블랙리스트 문건 속 기재 순서가 일치하기 때문에, 쿠팡이 경찰청 출입기자 명단을 확보하여 작성한 게 맞는 듯 보였다. 나는 사회부 기자도 아니지만, 찜찜함에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전화번호를 기입하여 검색해 봤다. 쿠팡 잠입취재는 한 적 없어도, 쿠팡에 관한 책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저자에 이름을 올렸으니 블랙리스트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책 저자 소개에도 “사회부에서 경찰청을 출입했다”고 적었던 터였다. 책을 쓸 당시, 나는 사회부에서 정치부로 부서를 옮기고 있었다.
곧바로 검색 결과가 떴다. 결과는 “검색된 데이터가 없다”였다.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약간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반성의 시간이 찾아왔다. 책을 쓸 때 나름 시간과 공을 들였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부족 했구나 싶었다. 다음에 또 취재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온 힘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022년 9월 초판이 발행된 책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저자로 참여해 쓴 내용은 ‘쿠팡은 무엇을 희생하여 성장할 수 있었는가’였다. 이를 위해 쿠팡의 성장 배경을 찾아보고, 쿠팡과 동종업계 산업재해 신청·승인 건수 및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 보고서 등 각종 자료를 수집했다. 심야노동 중 숨진 노동자의 유가족, 쿠팡 노동자, 노조, 전문가 인터뷰 등을 진행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쿠팡은 ‘노동자의 생체리듬을 무너뜨리는 심야노동’과 ‘사람의 노동력을 기계처럼 측정하여 쥐어짜는 구조적 시스템’ 등을 통해 업계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쥐어짜는 심야노동과 새벽배송으로 하루 만에 배송을 완료하는 ‘로켓배송’이 가능했고, 가장 절박한 노동자들이 이 시스템의 희생양이 됐다.
홀로 아들을 키우던 故 노 모 씨. 유족에 따르면, 남편 없이 아들을 부족함 없이 키우고자 했던 노 씨의 옷에는 항상 우수사원 배지가 달려 있었다. 노 씨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만보기 기록을 보면, 출근하지 않은 날 36보·472보 정도였던 노 씨의 걸음 수는 출근하는 날이 되자 많게는 3만5천보까지 찍혔다.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정든 센터를 떠나 동탄물류센터로 전환배치될 때도, 화재가 다 진압되기도 전에 새로운 센터로 출근했다. 202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날, 그는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제때 병원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숨졌다.
2021년 1월 11일 새벽 5시17분경 동탄물류센터에서 쓰러진 상태로 발견된 故 최 모 씨 또한 세 아이를 홀로 키워온 가장이었다.
버스운전기사 남편의 월급이 줄자, 힘을 보태겠다고 쿠팡 구내식당 조리보조사 일을 시작했던 故 박 모 씨도 세 아이의 엄마였다. 아이들을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다는 절실함으로 버텼건만, 박 씨의 몸은 견디지 못했다. 그해 10월 12일 새벽 6시 퇴근 후 집 욕실에서 숨진 故 장덕준 씨처럼, 그도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당일 숨졌다. 역학조사를 진행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따르면 평소 높은 강도의 직업적 신체 활동에 식수인원 증가로 인한 업무강도 상승, 집단감염 사태로 인한 청소업무 부담 증가, 재해 당일 긴급 합동점검으로 인한 바닥청소 및 방역 소독업무, 조리실 내부 극한의 온도 등에 따른 과로였다.
이들 노동자에게 쿠팡은 ‘마지막 일터’였다. 희망이기도 했고, 최후이기도 했다. 이곳이 아니면 희망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책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는 쿠팡이 망하길 바라면서 쓴 책이 아니다. 오히려 쿠팡이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쓴 책이다. 쿠팡의 고소·고발의 위협에도 계속해서 쿠팡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노조와 시민사회, 국회의원, 끈질기게 취재를 이어가는 MBC, 여러 매체의 기자들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내의 죽음 뒤 매일 쿠팡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故 박 씨의 남편 최 모 씨는 기자와 만나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쿠팡 망하자고 투쟁하는 게 아니에요. 더 이상 사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거거든요. 일하다 죽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 그게 제가 지금까지 쿠팡하고 싸우는 이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