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무죄’ 증거 불인정, ‘한동훈 수사팀’이 빌미 제공

압수수색 과정서 선별 누락·변호인 배제…전문가들 “검찰 엉뚱한 대처 이해 안 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패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4.2.7.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불법승계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는 검찰이 회계부정 혐의와 관련해 제출한 3천여 개의 문건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과 삼성바이오에피스 직원 자택에서 확보한 자료다. 재판부는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법적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검찰이 기초적인 절차를 누락한 것에 대해 의아하다는 분위기다. 압수수색을 포함해 수사 전반을 지휘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책임론이 거론된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지난 5일 이 회장의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연루된 로직스 회계부정 등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로직스와 에피스 서버에서 확보한 자료 3,641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해당 자료에는 이 회장(JY) 보고자료를 비롯해, 로직스 회계부정과 이 회장 관여 정황을 드러내는 관련 자료가 다수 포함됐다.

검찰은 지난 2019년 5월 인천 소재 로직스 3공장 회의실과 1공장 통신실 바닥을 뜯어, 숨겨져 있던 회사 공용서버와 외장하드, 업무용 PC 등을 압수했다. 같은 달 에피스 직원 자택에서도 에피스 네트워크 결합 스토리지(NAS) 서버 등을 확보했다. 삼성전자 부사장 3명이 로직스 회계부정 관련 증거를 인멸하라는 지시를 내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로직스와 에피스는 검찰 압수수색 이후 “증거인멸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대단히 송구하고 유감스럽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이번 재판부의 증거능력 불인정으로, 삼성 측이 공장 바닥까지 뜯어가며 숨기려 한 자료가 정작 회계부정을 입증하는 증거로는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책임론 교묘하게 빠져나간 한동훈, 문제의 압수수색 지휘

한동훈 위원장이 이재용 회장 선고 이튿날 무죄 판결에 대해 “제가 기소할 때 관여한 사건은 아니었다”고 한 대답은 책임론을 빠져나가기 위해 교묘하게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로직스 회계부정 사건 수사를 지휘한 한 위원장은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은 데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었다. 그는 2019년 5월 로직스 압수수색이 이뤄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서, 회계부정 사건을 배정받은 특수2부를 휘하에 두고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2019년 하반기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취임 직후 단행한 검찰 조직 인사 이후에도 한 위원장은 회계부정 사건 수사 지휘 라인에 있었다.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전국 검찰청 특수수사를 총괄했다. 특수2부의 송경호 부장검사가 한 위원장이 있던 3차장검사로 올라갔다. 회계부정 사건은 특수4부(경제범죄형사부)로 옮겨졌는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부장검사를 맡아 기소까지 수사를 이끌었다. 첫 검찰 출신 금감원장으로 윤석열 정부의 ‘검찰 편중 인사’를 대표하는 이 원장은 이재용 회장 선고 당일 오전 “국제 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 위상에 비춰서 이번 절차가 소위 사법 리스크를 일단락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무죄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함께 회계부정 사건의 단초가 된 국정농단 사건 특검에도 참여했다. 2016년 말 대전고등검찰청에 있던 윤 대통령이 국정농단의혹사건수사특별검사팀 수석 파견검사로 발령된 직후 한 위원장도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 2팀장에서 특검으로 파견됐다. 이들은 특검 수사를 발판 삼아 요직으로 진출했다. 2017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나란히 입성했다. 특히 특수부를 산하에 둔 3차장검사는 차기 검사장으로 가는 문지방과 같은 자리였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준 혐의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불법승계 사건에서 이 회장 회계부정과 부당합병 혐의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다. 사건 중대성을 고려할 때 ‘한동훈 수사팀’의 증거능력 관련 실책은 의문을 키운다.

지난 2017년 3월 6일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 기자실에서 박영수 특검(맨 오른쪽)을 비롯한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팀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윤석열 수사팀장, 이규철 특검보, 박충근 특검보, 이용복 특검보, 박 특검 ⓒ양지웅 기자

‘한동훈 수사팀’, 참여권 보장 변호인 요구 거부로 증거 불인정 빌미 제공

재판부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근거의 핵심은 혐의와 무관한 자료를 선별했는지, 선별 절차에서 변호인 참여권을 보장했는지 여부다. 방대한 자료가 담긴 서버 등 정보저장매체를 압수할 때는 선별 절차를 밟아야 한다. 영장에 기재된 혐의와 관련된 자료만 압수하는 게 원칙이다. 개인정보나 기업 영업기밀이 유출되는 등 피압수자 피해를 막기 위한 취지다. 가령 검찰이 회계부정 혐의를 받는 사람에게서 휴대폰을 압수하고 포렌식을 거쳐 사본을 만들 때, 혐의와 무관한 사적인 대화 내용과 사진은 폐기해야 한다. 자료를 선별할 때는 피압수자와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로직스와 에피스 서버도 마찬가지다. 압수수색 당시 검찰이 받은 영장에 기재된 혐의는 ‘회계부정 관련 증거은닉’이었다. 재판부는 검찰이 서버에 저장된 자료 중 회계부정 관련 자료를 선별하지 않았고 변호인 참여권도 보장하지 않아, 검찰 제출 자료를 위법하게 수집된 것으로 봤다.

검찰은 로직스 공장을 압수수색 할 당시 현장에서 선별 작업을 거치지 않고 서버를 통째로 반출했다. 현행법은 정보저장매체를 압수할 때 선별된 정보를 출력·복제해 제출받아야 하지만, 범위를 정해 출력·복제하기 어려울 때는 정보저장매체를 압수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로직스 공장 바닥에서 발견된 서버는 18테라바이트(TB)에 달한다.

문제는 서버 반출 이후다. 검찰은 서버에 저장된 75개 폴더 가운데 재경팀 자료가 담긴 것으로 보이는 폴더 12개를 추려, 사본 하드디스크(HDD)를 만들고 문서보안(DRM)을 해제했다. 또한, 변호인에게 폴더 내 데이터 내용을 열람하도록 했다.

주요 쟁점은 재경팀 폴더를 추린 것이 선별 절차에 해당하느냐다. 재판부는 검찰이 추린 12개 폴더에 대해 ‘회계부정과 관련된 업무 담당 부서가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하면서도, 해당 폴더에 혐의와 무관한 자료가 포함됐을 가능성을 강조했다. 문서 내용을 바탕으로 혐의 관련 정보를 골라내는 과정을 거쳐야 적법한 선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폴더 이름만으로는 회계부정과의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폴더를 특정한 것만으로 해당 폴더 내의 각각의 전자정보를 개별적으로 선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변호인이 선별 절차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검찰은 변호인이 서버에 저장된 정보를 선별 절차 없이 압수하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DRM 해제에 협조했다는 점을 들어 적법성을 주장했지만,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판결문에는 로직스 공장에서 서버가 반출된 이후 변호인이 유관 정보를 선별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으나, 검찰이 로직스 서버 자체가 증거은닉 증거물에 해당해 저장된 정보 일체를 압수하겠다고 통지한 사실이 적시됐다. 검찰이 변호인의 선별 절차 참여를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변호인이 서버에서 추려진 폴더에 저장된 파일을 확인하기는 했으나, 이는 변호인 참여를 배제한 채 검찰이 추린 정보를 제한적으로 열람할 기회만 준 것으로, 참여권 보장으로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에피스 직원 자택에서 확보한 정보저장매체의 선별 절차에서도 검찰은 위법 소지를 남겼다. 변호인이 참여한 가운데 선별 절차를 진행하다가 돌연 중단했다. 이후 정보를 선별 절차 없이 모두 압수하고, 정보저장매체 원본도 돌려주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선별 절차와 변호인 참여는 압수수색의 기초…“의도적” 의심도

선별 작업과 변호인 참여는 압수수색의 기초적인 절차라고 법조계는 설명한다. 검찰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현장에서 선별하지 못하고 정보저장매체를 반출했더라도, 이후 선별 절차에서 변호인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판례가 처음 나온 건 2015년이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검찰이 피의자 참여 없이 선별을 진행한 경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형사소송법의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참여할 수 있다’는 조항이 근거가 됐다. 압수수색은 정보저장매체 반출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진행되는 선별 절차도 포함한다는 논리다. 해당 대법원 판례는 이듬해 대검찰청예규에도 반영됐다.

검찰이 국내 1위 기업의 대규모 회계부정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절차상 허점을 남겨 증거 불인정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경팀 폴더 12개를 추린 것으로는 절차적 완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동일한 폴더 안에도 다양한 정보가 담길 수 있으니, 파일 단위의 선별이 이뤄져야 비로소 압수수색이 종료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이미 정립됐다는 시각이 많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관이 혐의사실과 관련 없는 자료를 출력해 보관할 수도 있으니, 피압수자와 변호인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을 경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현행법과 판례의 취지”라며 “판결문대로라면, 수사기관이 엉뚱하게 대처한 것이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인 권양섭 군산대 법학과 교수는 “절차 부분에서 깨지면 증거능력 자체가 부정되는 만큼, 검찰이 원칙적이고 보수적으로 접근해 변호인 참여하에 파일 선별까지 거쳤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 판단이 명백하게 잘못됐다고 할 순 없겠으나, 더 면밀하고 신중하게 판단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가했다.

검찰의 절차 누락이 의도적인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법률 전문가는 “참여권 보장은 대법원 판례로 확립된 원칙이기 때문에 검찰이 기본적인 절차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면서 “이재용 회장의 유죄를 받아낼 진심이 있었다면 중대한 절차적인 실수를 저질렀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외적으로는 공장 바닥에 있는 증거를 찾아내며 수사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고의로 절차를 누락해 합법적으로 증거를 못 쓰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중 플레이를 했다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02.05 ⓒ민중의소리

삼성 은닉 증거 불인정으로 검찰 주장 판판이 깨져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이재용 회장의 회계부정 혐의를 겨냥한 검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불법승계 사건 중심에 있는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당시 이 회장은 제일모직 가치가 높게 산정될수록 유리한 입장이었다. 이 회장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합병을 정당화하기 위해 회계부정에 개입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핵심은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로직스가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한 것이 합당한지 여부다. 로직스는 해당 회계처리를 거치면서, 3천억원이 넘었던 2014년도 누적 결손금을 다 털어내고 이듬해 1조 6천억원의 이익잉여금을 남기게 됐다.

로직스 회계처리가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로직스가 2014년에는 에피스를 단독 지배했으나, 이듬해에는 지배권을 단독으로 행사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에피스는 로직스가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설립한 회사다. 바이오젠은 에피스에 대해 ‘지분 50%-1주’ 콜옵션과 함께, 지적재산권과 여타 제품 관련 자산의 매각 또는 양도, 새로운 제품 추가, 구조조정 등 10가지 중요 의사 결정에 대한 동의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로직스가 에피스에 대해 단독으로 지배력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 힘든 이유다. 에피스 설립 초기부터 로직스와 바이오젠이 공동의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바이오젠 콜옵션 행사 가능성을 근거로 로직스가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검찰은 삼성 측이 추진한 이른바 ‘오로라 프로젝트’에 주목했다. 오로라 프로젝트에는 에피스에 대한 바이오젠 동의권 조항을 변경하고,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에피스 지분을 되사는 방안이 담겼다. 검찰은 오로라 프로젝트를 근거로, 로직스가 에피스에 대해 단독 지배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봤다.

삼성 측은 바이오젠 동의권은 경영 참여권이 아니라 소수주주 방어권에 불과해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에피스에 대한 지배권은 로직스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삼성 측이 작성한 ‘Project AURORA 개정 고려 조항 정리’ 문건에 바이오젠 동의권의 지배력 여부를 고려한 내용이 없다며 검찰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 판단 과정에서 ‘[오로라] 일정 및 계약서, 삼성1차 제시(안)’, ‘[오로라] 주요계약서 Amend(개정) 고려 사항’, ‘(오로라) ActionItems(작업항목)’ 등 로직스와 에피스 서버에서 확보된 문건은 배제됐다. 또한, ‘바이오젠 지분 매각 논의 경과’, ‘바이오젠사 지분매입 협상방안(안)’, ‘바이오, 콜옵션 행사지분 매입 관련 CEO 의견’ 등 문건도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들 자료에는 검찰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 혐의 입증에 의미 없는 자료라면 삼성이 조직적으로 숨기려 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재판부가 지나치게 피고인 방어권을 보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대표)는 “형사재판이라는 게 형사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증거능력을 엄격하게 따지면 피고인의 방어권은 보장되겠지만,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국가의 형벌권을 행사하는 측면에서는 근본적으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죄를 지어도 증거능력만 잘 다투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가 돼버린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검찰이 증거를 조작한 것도 아닌데 증거능력을 부인해버리면 국민의 사법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합병에 의한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부정과 부정거래행위에 대한 증거판단, 사실인정 및 법리 판단에 관해 1심 판결과 견해차가 크다”며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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