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국가안보실)이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이 집중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의심되는 시기 동안 해병대 측과 전화통화를 포함해 최소 44회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민중의소리’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해병대 수사단(단장 박정훈 전 대령)이 채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에 착수한 작년 7월 19일부터 국방부 지시로 군검찰이 사건기록을 회수해 간 8월 2일까지 국가안보실과 해병대(사령관 및 수사단장) 간 통화와 문자, 이메일 연락이 44차례 이뤄졌다. 이 중 통화는 29회, 문자는 13회, 이메일은 2회였다.
안보실 주요 메신저는 임종득 당시 2차장과 임기훈 국방비서관, 김형래 대령(해병대서 파견)이었다. 해병대서는 주로 김계환 사령관이 연락을 했다. 김 사령관은 임종득 차장과 3회, 임기훈 비서관과 7회, 김형래 대령과 8회 통화했다. 박정훈 대령과 김형래 대령 사이 통화도 8차례 있었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은 사망사건 조사 중 범죄 혐의를 인지하면 ‘지체 없이’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해병대 수사단의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역시 여기에 해당해 독립성을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착수 당일부터 안보실과 해병대 사이에 연락이 오갔다는 사실 자체가 부적절한 수사개입 의혹 정황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의소리’ 취재를 종합하면, 7월 19일~8월 2일 주요 국면마다 안보실과 해병대 간 연락이 오간 것은 물론, 안보실에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케 하는 메시지를 해병대 측에 수차례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간 순서대로 파악된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 뚜렷한 수사개입 정황을 알 수 있다.
우선 7월 19일과 20일 임기훈 비서관과 김형래 대령이 돌아가면서 김계환 사령관과 세 차례 통화를 한 뒤에 7월 21일 김 대령과 박정훈 대령 사이에 13차례 통화와 문자가 오갔다. 취재 결과 이 시기에 안보실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를 해병대 수사단이 아닌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해 수사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국방부 장관 직속 수사기구로, 용산 국방부 영내에 위치해 있다. 대통령실 청사와도 도보로 5분 거리다.
김형래 대령은 7월 21일 박 대령에게 ‘안보실은 해병대에서 발생한 사건인데 해병대에서 수사를 하는 것이 공정한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다’며 조사본부로 이관하는 방안을 언급했고, 박 대령은 ‘다른 데서 해도 상관은 없는데, 우리가 해도 공정하게 잘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실 검토 사항을 확인한 당일 오전 박 대령은 국방부 조사본부 김진락 수사단장(대령)에게 조사본부 이관에 대한 견해를 물었고, 김 단장은 ‘왜 우리한테 넘기려고 하느냐’는 취지로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같은 날 안보실은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수사계획서까지 받아갔다.
이후 양측은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해병대 수사단 수사 결과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된 7월 30일부터 긴박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해병대 수사단은 이날 수사 결과 및 이첩 계획에 대한 장관 결재를 받았고, 다음날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있었다.
이날 안보실과 해병대 사이 통화가 집중적으로 오간 시점은 박정훈 대령이 이종섭 전 장관에게 결재를 받은 이후다. 장관 결재본의 핵심 내용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 장성급들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김형래 대령은 이날 오후 해병대 수사단장이던 박정훈 대령에게 ‘안보실장이 보고 싶어 하는데 장관 결재본을 보내줄 수 없느냐’고 요청했고, 해병대 정책실장도 박 대령에게 ‘안보실에서 수사 결과 보고서를 보내달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령은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안된다”며 거절했다. 이후 박 대령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언론 브리핑 자료라도 보내주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해당 자료를 안보실에 전달했다. 안보실이 장관 결재 사실을 파악하고 해당 내용을 통째로 입수하려고 한 것이다.
안보실은 수사단 자료를 확보하려는 행위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안보실에 파견돼 있던 김형래 대령이 수사단 측에 전한 이메일 메시지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김형래 대령은 이날 저녁 장관 결재본 대신 언론 브리핑 자료를 해병대 수사단 유모 소령으로부터 이메일로 전달받고 난 뒤에 “그래 수고한다. 절대 이쪽에 전달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회신했다. 안보실에서 수사 관련 자료를 사전에 확보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비밀 유지를 주문한 것이다.
이는 안보실-군당국 간 자료 공유와 관련해 국방부가 기존에 밝혔던 입장과 배치된다. 당초 안보실이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언론브리핑 자료를 사전에 전달받은 데 대해 수사외압 정황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국방부는 작년 8월 “외교안보부처의 경우 통상적으로 안보실과 언론설명자료를 공유하고 있어 ‘외압 소지가 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국방부 설명처럼 통상적으로 안보실과 공유해온 자료에 불과하다면, 안보실이 “절대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주문한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안보실에 사건 관련 자료가 넘어간 다음 날인 7월 31일엔 예정돼 있던 해병대 수사단의 언론 브리핑이 1시간 전에 돌연 취소됐다. 이날에는 오전 9시 53분께 임기훈 비서관과 김계환 사령관의 통화를 시작으로 오후까지 안보실-해병대 연락이 긴박하게 오갔다. 임 비서관과 김 사령관의 이날 오전 첫 통화 이후에 윤석열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안보실로부터 수사 내용을 보고받고, 국방부 장관을 연결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느냐”고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국방부 장관은 자신이 결재한 것을 번복하고 해병대 수사단에 이첩 보류 지시를 내렸다. 같은 날 박정훈 대령은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라는 취지의 내용을 수차례 전달받았다.
박 대령은 8월 1일 국방부 및 김계환 사령관과 수차례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 및 대통령실발 수사외압을 인식하고, 다음 날인 8월 2일 결국 예정대로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기로 마음먹는다. 박 대령이 윗선의 지시와 달리 8월 2일 경찰 이첩을 강행하자 임종득 당시 2차장이 나서기 시작한다. 임 전 차장은 이날 오후 12시 50분과, 오후 3시 56분, 오후 4시 13분 김 사령관과 세 차례 통화를 나눴다. 통화시간은 각각 7분 52초, 4분 45초였다.
같은 날 박정훈 대령에 대한 보직해임 조치, 군검찰의 항명죄 입건, 이첩 자료 회수 절차가 신속하게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