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축사 도중 졸업생이 강제로 끌려 나간 사건에 대해 카이스트 동문들은 "쫓겨난 졸업생과 전체 카이스트 구성원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카이스트 동문들은 17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R&D(연구개발) 예산 삭감으로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하는 카이스트 졸업생들 앞에서 미안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공허한 연설을 늘어놓고서는 행사의 주인공인 졸업생의 입을 가차 없이 틀어막고 쫓아낸 윤 대통령의 만행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인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95학번)를 비롯해 10학번 졸업생까지 다양한 학번의 카이스트 졸업생들이 참석했다.
황 박사는 "졸업식날 가장 축하 받아야 할 주인공인 학생이 입을 틀어막히고 사지가 들려나가는 경악할 사건이 벌어졌다"면서 "그 학생이 R&D 예산 복원이라는 그 한마디를 끝맺지 못하고 끌려나갔다. 이런 일이 백주대낮 남의 잔칫집에서 일어난 데 대해 참담한 금할 수 없다"고 분노했다.
그는 "R&D 예산 삭감의 여파가 가장 먼저 도착한 게 대학원 학생들이다. 박사후연구원의 신규 채용이 막힌 것"이라며 "졸업생들에게 얼마나 큰일인지 알기에 그 학생의 외침은 혼자만의 목소리가 아님을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2004년 카이스트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혜민 더불어민주당 광명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도 "졸업식 자리에 R&D 예산을 삭감한 대통령이 와서 R&D 예산을 증액하겠다는 허무맹랑한 발언을 일삼아 모든 졸업생과 학부모에게 분노와 설움을 안겨줬을 것"이라며 "심지어 졸업생이 주인공인 자리에서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고 쫓아냈다. 과학(科學)대통령이 아니라 가학(加虐)대통령"이라고 분노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카이스트 졸업식과 같은 날(16일) 진행된 대통령과학장학생 등이 참석한 '미래 과학자와의 대화'에서 "저는 우리 과학자들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2006년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한 04학번 최성림 씨는 카이스트 밖에서도 과잉경호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졸업생이 끌려 나간 같은 시각, 카이스트 출신인 김선재 진보당 유성갑 후보 또한 교문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중 대통령 이동 동선 근처라는 이유로 폭력적으로 진압당했다"고 설명했다.
심 씨는 "선거법의 보호 아래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선거운동에 공권력, 물리력을 행사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며 "명백한 과잉·심기경호"라고 비판했다.
카이스트 동문들은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이들은 "연구비가 삭감돼 많은 교수들과 박사후 연구원이 연구장비를 구입하지 못하거나 수년간의 연구를 축소,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고, 대학원생들은 연구를 할 시간에 당장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태를 발생시킨 '1등 책임자' 윤 대통령은 졸업생들이 당장의 예산 삭감에 갈 곳을 잃어 불안한 마음을 갖고 참석한 이 졸업식에서 파렴치하게 허무맹랑한 연설을 했다"면서 "어찌 졸업생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카이스트 동문들은 "우리는 정부의 R&D 예산 삭감 이후 연구과제의 존폐가 달려 수개월 동안 무언의 ‘입틀막’을 강요당해 왔다"면서 "더 이상 두고볼 수만은 없다. 수십만 카이스트 동문과 대학원생, 학생들, 교수들이 모두 나서서 이제는 국가의 미래를 걸고 대통령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요구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에게 ▲R&D 예산 원상 복원 ▲쫓겨난 졸업생에게 공식 사과 ▲카이스트 구성원 및 대한민국 과학기술자에게 대국민 사과 등을 촉구했다. 카이스트 동문들은 기자회견 후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이 같은 요구가 담긴 의견서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