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공개사유] 과도한 정보공개 청구했다고 경찰 수사의뢰?

최근 '정보공개'를 키워드로 언론 기사를 찾아보다가 황당한 뉴스를 발견했습니다. 춘천시가 과도하게 정보공개 청구를 한 민원인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는 뉴스였습니다. 

지난 2월 2일 KBS강원은 <“해도 너무해”…정보공개 청구 하루에 75건>이라는 제목으로 뉴스를 보도했습니다. 보도 내용은 이렇습니다. 춘천에 사는 한 40대 남성이 춘천시청을 상대로 '세계태권도 문화축제'에 대해 200여일 간 557건의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고 합니다. 이 민원인은 어느 날에는 하루에 75건의 정보공개 청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처리하기 위해 춘천시청 10여개 부서의 공무원 수십 명이 동원되었고, 청구 한 건을 처리하는데 평균 6일이 걸렸으니 모두 2만3000시간 정도의 행정력이 낭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민원인의 무리한 정보공개 청구로 인해 직원들이 야근을 하고, 주말까지 반납하는 상황이 왔고, 결국 춘천시는 업무 방해 혐의로 해당 민원인을 경찰에 수사 의뢰 했다고 합니다. 취재진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민원인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보도만 보면 악성 민원인이 공무원들을 괴롭혔다는 뉘앙스가 읽혀집니다. 실제로 정보공개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않게 존재하니, 이 보도 역시 그러한 경우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보공개 운동을 하는 활동가 입장에서 보도 영상을 살펴보면서 여러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해도 너무해”…정보공개 청구 하루에 75건 ⓒKBS강원 유튜브 자료화면 캡쳐 이미지

“해도 너무해”…정보공개 청구 하루에 75건 ⓒKBS강원 유튜브 자료화면 캡쳐 이미지

'하루에 75건'을 정보공개 청구했다면 굉장히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보도 영상의 정보공개청구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해당 청구인은 대부분 정보공개포털의 정보목록에서 '세계태권도 문화축제'로 키워드 검색한 후, 검색되어 나온 전자문서들을 청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료화면에 등장하는 청구 제목이 대부분 '(부서명-문서번호)문서제목 문서를 정보공개 청구합니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러한 청구 제목은 정보공개포털에서 정보목록 상의 문서를 청구할 때 자동으로 등록되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은 정보공개법에 따라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국민들이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정보목록을 작성하여 공개해야 합니다. 보통 공공기관이 전자문서를 통해 업무를 보기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공무원들이 작성한 문서들은 처리 절차가 끝나면 자동으로 문서의 제목, 담당부서, 담당자명, 업무분류체계 등이 정보목록에 등록됩니다. 이렇게 정보목록에 등록되는 문서들은 이미 업무 처리 과정에서 공개/비공개 여부와 그 근거가 결정되어 있습니다.

국민 누구나 정보공개포털에 접속하여 공공기관의 정보목록을 살펴볼 수 있는데, 정보목록에서 제공하는 문서 정보를 보다가 내용이 궁금해지면 청구 버튼을 눌러 손쉽게 해당 문서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청구인의 경우 모종의 이유로 춘천시에서 열린 세계태권도 문화축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정보목록을 살펴보다가, 관련 문서들을 정보공개 청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해당 청구인은 하루에 75건의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전자문서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것이지, 공무원이 청구 처리를 위해 75건의 정보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종류의 과도한 요구를 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75건의 문서 하루에 청구하면 과도한 것일까?
경찰 수사까지 의뢰할 정도로?


앞서 말했듯이 정보목록에 등록되는 문서는 이미 업무처리 과정에서 공개/비공개 여부와 그 근거가 결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해당 문서가 공개 문서라면 담당공무원은 그냥 공개 결정을 하면 되는 것이고, 만약 비공개 문서라면 비공개 근거에 따라 비공개를 통지하면 됩니다. 물론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통지할 때는 문서 결재와 등록 과정을 거쳐야 하니 공무원 입장에서 귀찮은 업무일수는 있겠으나, 뉴스에서 말한 것처럼 '2만3000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행정력이 투입될 만한 업무인가 하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집니다. 정말로 이미 만들어진 문서를 매일 2~3건씩 정보공개 청구하는 정도 춘천시 공무원들이 잦은 야근과 주말까지 반납하며 고생했다면, 그건 과도한 청구가 문제라기보다는 춘천시청의 정보공개 업무 처리 프로세스를 다시 점검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의심이 갑니다.

그뿐 아니라 정보공개 처리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여 '업무방해'로 경찰에 수사의뢰 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폭거입니다. 정보공개는 법으로 정해진 공공기관의 의무 사항으로, 공공기관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업무입니다. 정보공개법에서는 이미 시행령 등을 통해 한꺼번에 많은 정보공개가 청구되었거나, 업무량 폭주로 공개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결정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약 업무가 늘어난다면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공기관에서 알아서 인원을 충원하거나, 법으로 정해진 대로 연장 통지를 하면 될 일입니다. 시민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알권리를 행사했다고 해서 공공기관이 사법조치에 나선 것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을 뿐더러, 이후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를 위축시킬 수 있는 반민주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춘천시가 개최한 ‘세계 태권도 문화축제’에 대한 언론 비판 보도 ⓒ뉴스 보도화면 캡처

실제로 문제가 된 청구는 대다수가 춘천시가 개최한 '세계 태권도 문화축제'에 관한 건으로 보입니다. 해당 축제는 방문객에 비해 예산 사용이 과도하여 이미 춘천시의회나 언론 등을 통해서도 '고비용 저효율 축제'라는 비판을 받았고, 폭염으로 인한 화상 환자 발생이나 쓰레기 방치가 문제가 되어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춘천판 잼버리'라는 논란도 일었던 행사입니다. 지역 주민 입장에서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정보공개 청구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춘천시청이 '업무방해'를 운운하며 경찰에 수사의뢰를 한 것은 비판의 목소리를 막기 위함이 아닌가 의혹을 가지게 되는 부분입니다.

무엇보다도 문제적인 것은 "취재진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 민원인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라는 뉴스의 내용입니다. 취재진이 해당 청구인에게 연락을 시도했다는 것은 취재진이 청구인이 누구인지 특정하여 연락처를 알아냈다는 것인데, 누가 어떤 정보를 정보공개 청구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은 청구 대상 기관인 춘천시청 혹은 경찰 밖에 없으니 이는 곧 공공기관이 언론에게 청구인의 개인정보를 넘겼다는 뜻입니다. 공공기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시민의 개인정보를 유출했다면 당연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며, 오히려 이 사안이야 말로 경찰이 수사해야 할 대상일 것입니다. 

KBS강원이 춘천시청이 제공한 자료에 의존해 '과도한 청구'가 문제라는 뉘앙스로 이를 보도한 것 역시 굉장히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매일같이 2~3건씩 정보공개를 요구'한 것이 과연 "해도 너무해"라고 뉴스 제목을 붙일 일인지는 기자라면 충분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자야말로 정보공개 청구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 누구보다도 지역 주민들의 알권리를 대변해야 할 공영언론인 KBS강원인 만큼 자신들이 내보낸 보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반성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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