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주먹부터 나가고 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폭력적 리더십

인간은 싫건 좋건 위계질서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물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형성된 이후부터 그 어떤 사회에서도 이 위계질서가 형성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더 멀리는 문명 형성 이전의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조차 인류는 항상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사회를 운영했다.

그래서 인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운명처럼 마주하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인류는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리더를 뽑고, 어떤 합의를 통해 그를 리더로 인정하느냐에 관한 문제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하나는 폭력설이고 하나는 역량설이다.

폭력설은 말 그대로 신체적 위력을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공포를 심어주는 자가 리더가 된다는 가설이다. 반면 역량설은 뛰어난 역량을 보유한 이가 이타적인 성향을 발휘해 조직에 기여함으로써 구성원들로부터 리더로 추앙을 받는다는 가설이다.

이 두 가설의 특징은 명확하다. 폭력설은 인간의 동물성, 즉 영장류 유인원 시절의 본성을 기원으로 한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리더를 다툴 때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폭력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경우다.

반면 역량설은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로 진화하고 함께 사는 법을 깨우치면서 빛을 발한 가설이다. 유인원과 호모 사피엔스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주먹이 먼저 나가느냐, 아니면 지혜를 모아 해법을 함께 찾느냐이다. 인류는 함께 사는 문화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조직의 역량을 발전시킬 지혜로운 리더를 찾으며 진화해 나갔다.

윤석열의 유인원 리더십


나는 이런 종류의 사태가 한 번이면 모르겠는데 두 번 연속으로 반복된다는 점을 정말 참을 수가 없다. 대통령실 경호원이 강성희 진보당 의원의 입을 막고 사지를 질질 끌고 나간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남의 학교(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연구개발(R&D) 예산을 복원하라”고 항의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학교 졸업생을 또 질질 끌고 나간단 말인가?

우리나라 대통령 경호실이 무슨 깡이 있어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경호를 하겠나? 이 말은, 이런 사태가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이유가 경호원들의 의지라기보다 대통령의 성향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라. 윤석열 대통령이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강성희 의원 사태가 났을 때 경호실에 “웬만하면 너무 폭력적으로 진압하지 마라”라고 한마디 했을 법 하다. 그랬다면 이런 사태는 절대 반복되지 않는다. 안 그랬으니까, 혹은 “앞으로도 나한테 접근하거나 내가 주인공이어야 할 자리에서 목소리 높이는 놈들은 다 끌어내, 아주 잘 했어!”라고 칭찬을 했으니까 경호원들이 그런 폭력을 또 사용하는 거다.

16일 오후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졸업식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의하자 경호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하고 있다. (대전충남공동취재단) 2024.2.16 ⓒ뉴스1

우연으로 볼 수 없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은 그게 바로 윤석열 대통령 리더십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다. 즉 윤 대통령의 리더십은 역량설이 아니라 폭력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견을 지닌 구성원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쥐뿔도 관심이 없다. 그럴 능력도 없다. 그러니 일단 주먹부터 휘두른다. 내가 대통령인데 어딜 감히! 이런 태도를 볼 때마다 이권을 앞에 두고 동족을 서슴없이 제거하는 침팬지가 떠오른다. 대한민국 사회가 거의 유인원 시절로 퇴보하는 중이다.

서번트 리더십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소설 동방순례(Journey to the East)에는 레오(Leo)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레오는 동방을 여행하는 여행단에서 잡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하인이었다.

고작 잡일(?)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레오는 매우 즐겁게 일을 했다. 그는 눈에 잘 띄지는 않았지만 겸손하고 다정하며 성실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여행단이 지쳤을 때 레오는 흥겨운 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어 사람들을 흥겹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레오가 사라졌다. 단지 하인 한 명이 사라졌을 뿐인데 여행단은 이상하게도 무기력감에 빠졌다. 레오의 노래와 휘파람 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급기야 여행단은 혼란에 빠졌고 결국 여행은 중단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H.H는 레오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까지 하인으로만 알았던 레오가 실제로 그 여행단을 후원한 교단의 리더이자 정신적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던 레오가 그 사실을 숨기고 가장 낮은 자리(하인)에서 여행단을 섬긴 것이다.

경영학자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Greenleaf)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서번트 리더십은 말 그대로 리더가 하인처럼 조직원들을 섬기고 배려하며 조직을 이끄는 것을 뜻한다.

그린리프에 따르면 위에서 군림하며 이래라 저래라 명령만 하는 리더는 조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다. 그런 리더는 부하를 믿지 않고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눈에 거스른다고 주먹부터 휘두르는 리더가 조직을 제대로 이끌 리 만무하다.

반면 구성원들을 섬기고 경청하며 존중하는 리더는 조직의 진심을 얻는다. 레오가 하인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조직을 이끈 진정한 리더였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리더가 바로 현대 문명사회에 어울리는, 역량설에 기반을 둔 리더다.

레오 같은 리더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좀 아무 데서나 주먹부터 휘두르지 않는 정상적인 리더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이게 그리도 어려운 요구인가? 대통령 하나 잘 못 뽑았을 뿐인데 나라가 뒷걸음질을 쳐도 너무 심하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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