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제작본부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4월로 예정된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세월호 다큐) 방영을 무산시켰다고 한다. 박민 사장 체제 이후 편파 방송의 정도가 점점 노골화되고 있어 우려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이처럼 편성권을 남용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아예 잘라버린 점은 다른 차원의 심각한 문제다. 이로써 KBS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숫자를 교통사고 사망자의 것에 비유하며 사건의 진실을 가리려 했던 딱 10년 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문제의 세월호 다큐는 올해 10주기를 맞아 4월 18일 방영될 예정이었다. 제작 상황으로 봤을 때 4월 방영에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느닷없이 제작본부장이 나서서 방영을 6월 이후로 미루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앞서 밝힌 총선의 영향이란 바로 현 여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의미다. 그런데 황당한 점은 총선은 4월 10일이고 방영 예정일은 그 이후 18일이어서 시차적으로도 영향이고 뭐고 할 게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제작진의 항의에 대해 총선 후 한두 달은 영향권이라고 본다는 제작본부장의 해괴한 반응이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아예 방영을 하지 말라는 압력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주인공은 이제원 본부장이다. 그는 박민 사장이 임명한 제작1본부장이다. 과거 자신의 SNS에 5·18 북한군 개입설 관련 게시물을 올린 바 있고, 라디오센터 간부 시절에도 출연진 명단을 가져온 PD에게 이들이 좌빨이 아닌 이유를 5가지 적어보라고 하는 등의 논란을 야기한 자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런 인물이 편성권을 쥐락펴락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왜곡할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국가의 구조 방기와 진실 규명 방해로 크나큰 아픔과 상처를 겪은 유가족에게는 더욱 몹쓸 일 됐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의미는 남다른 것이다. 마땅히 이를 조명하고 남겨진 과제를 밝히는 것이 공영방송의 역할이어야 한다. KBS는 세월호 다큐를 예정대로 방영하고 이 본부장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