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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홍의 원전 없는 나라] ‘고준위특별법’ 관제 데모를 고발한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범국민대회 개최(안)’ 캡쳐. 하단에 KORAD 이사장 의견이 명시되어 있다. ⓒ필자 제공


대표적인 친원전 단체인 사단법인 사실과과학네트워크의 조기양 대표가 2월 19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조 대표를 시작으로 친원전 단체의 1인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고준위특별법의 2월 임시국회 통과다. 때맞춰 고준위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보수 언론의 칼럼과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고준위특별법은 여야 합의를 이루지 못해 사실상 폐기된 법으로 간주됐으나, 총선을 앞둔 어수선한 틈을 이용하여 ‘억지’ 통과를 획책하는 모양새다.

핵산업계는 한발 더 나아가 2월 23일 국회에서 ‘고준위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경주에서도 버스 8대가 상경할 예정이다. 월성핵발전소 인근 마을마다 인원 동원을 할당받아 주민을 모으고 있다. 버스 8대가 상경하려면 버스 임차비용 포함하여 식대 등 약 2천만 원가량의 비용이 들어간다. 고준위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주민들에게 새벽잠 설치며 2천만 원의 돈을 써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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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경로로 확인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버스 및 식사 등 비용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지원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범국민대회 개최(안)’의 하단에는 “범국민대회인 만큼 산업부, KORAD, 한수원 인사 말씀은 제외 가능(KORAD 이사장 의견)”으로 표기되어 있다. KORAD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의 영어 명칭 줄임말이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하면 공공기관이 이해관계가 밀접한 법안 제정을 위해서 국회를 압박하는 관제 데모를 조직한 정황이 확실해 보인다.

비록 비용을 지원받더라도 주민들이 새벽잠 설치며 서울까지 가려면 고준위특별법이 안겨주는 이익이 확실해야 한다. 범국대회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고준위특별법에 대한 의견을 여쭈어보니 ‘특별법이 통과되면 중간저장시설을 만들어 월성원전의 고준위폐기물을 반출한다.’ ‘보상금을 인근 주민에게 현금으로 50%로 지급한다.’ 등의 답변이 돌아왔다. 40년 넘게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을 안고 살아온 주민들의 절박한 마음이려니 하면서도 허탈했다. 현금으로 보상금이 지급되고 폐기물 반출이 빨라진다는 주장은 혹세무민에 가깝기 때문이다.

작금의 고준위특별법은 주민들에게 매우 불리한 법이다. 갈 곳 없는 고준위핵폐기물을 핵발전소 부지에 더 많이 더 오랫동안 쌓아두기 위한 법에 불과하다. 특별법의 핵심 조항이 ‘부지 내 저장시설 건설’이기 때문이다. 핵산업계는 골치 아픈 고준위핵폐기물을 손쉽게 처리하는 보검을 손에 쥐게 된다. 기존 핵발전소 부지에 저장시설을 계속 만들면 그만이다. 앞으로 주민들이 고대하는 고준위핵폐기물 반출은 꿈에서도 불가능한 일이 된다.

10월 16일 KBS부산 뉴스 보도, 고준위 특별법 ‘무산 위기’라고 전했다. 무산이 위기인 것은 핵산업계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필자 제공

또한 주민들이 기대하는 ‘중간저장시설’ 건설도 더욱 어렵게 된다. 고준위특별법은 중간저장시설을 영구처분장 부지에 건설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외국 사례에서 보듯이 영구처분장 부지를 확보하는 일은 요원하다. 그래서 중간저장시설을 영구처분장에서 분리해, 축구장 크기의 중간저장시설을 서울에도 손쉽게 건설할 수 있도록 해야만 주민들이 염원하는 고준위핵폐기물의 반출이 가능하다.

아무리 따져봐도 고준위특별법은 핵발전소 주민에게 해로운 법이다. 새벽잠 설치며 국회로 달려가 “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고 외칠 일이 아니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들, 보수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는 이들의 면면만 보아도 누구를 위한 고준위특별법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총선을 앞두고 ‘자칭’ 범국민대회와 언론의 총공세에 밀려서 야당이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오히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의 관제 데모 의혹을 탈탈 털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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