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소영의 교사생각] ‘늘봄’ 아래 감춰진 목소리

돌봄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얼마 전 야간 노동자들을 심층 인터뷰한 <달빛 노동 찾기>라는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 책에는 우체국, 공항, 지하철, 대학교, 교도소, 고속도로 등 곳곳에서 야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이 책 덕분에 우린 야간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비로소 야간 노동에 대해 제대로 성찰할 수 있었다. 저자 중 한 분이 24시간 어린이집 선생님의 이야기도 책에 싣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고 말해주었다. 형용모순처럼 들리는 ‘24시간 어린이집’이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왔다.

‘늘봄’에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없다

24시간 어린이집만큼은 아니지만 아프게 다가오는 곳이 있다. 올 하반기부터 전면 시행한다는 늘봄 정책이 만들 13시간 초등학교다. 늘봄학교는 방과후학교와 돌봄을 묶어 초등돌봄의 양적 확대를 빠르게 하겠다는 정책이다.

‘늘봄’이라는 예쁜 말은 아이의 목소리를 감췄다. 아이의 입장에서 늘봄학교는 초등학교에 아침 7시에 가서 밤 8시에 오는 것, 학교에서 13시간을 보내는 것일 테다. 물론 13시간 꼬박 학교에 있을 아이들은 아주 적겠지만, 그런 아이들이 생길 것이다. 그 아이들은 학교가 감옥 같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5일 경기도 하남 신우초등학교에서 '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늘봄학교' 주제로 열린 아홉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앞서 늘봄학교 방송댄스 프로그램을 참관하고 있다. ⓒ뉴시스

초등돌봄에 대해서는 아니지만 학교에 남는 것에 대한 초등학생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던 귀한 자료가 있다. 2018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초등학생이 3시에 하교하는 ‘더 놀이학교’를 제안한 적이 있다. 그때 전교조가 전국 초등학생 3~4학년을 대상으로 찬반을 물었더니(5,133명 참여) 71.2%의 학생이 반대하였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쉬고 싶다, 학교에 오래 있으면 피곤하다.”가 가장 많았다. (출처: 전교조 누리집)

아이에겐 쉼이 필요한데 학교는 아이들이 쉴만한 공간이 아니다. 아이들이 편하게 씻지는 못하더라도 편하게 화장실이라도 다녀올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딱딱한 책상과 의자에 앉아 있기보다 바닥에 눕기도 하고 낮잠도 잘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학교는 실내화마저 벗을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런데 정부는 끊임없이 아이들을 학교에 더 오래 붙잡아 두려고 계속 시도한다. 왜? 어른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학교에서 돌봄을 하면 돈을 조금만 들여도 되니까.

보호자(학부모)의 목소리는 제대로 듣는가?

한 워킹맘이 고등학교 2학년 자녀로부터 초등학생 때 돌봄교실이 싫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는 기사가 인상에 남는다. (출처: 쿠키뉴스 2024. 2. 16. “돌봄이 제일 싫었어요”…아이를 위한 늘봄학교는 없다) 어떤 부모인들 아이를 학교에 붙잡아 두며 행복하겠는가? 현실적 여건이 어려우니 저비용으로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돌봄교실을 이용했을 것이다.

이제 와 말하지만, 나는 24시간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대책 없이 아이를 낳고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학원 강사를 하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갔을 땐 방과후 대책이 없어 큰아이를 태권도학원에서 저녁까지 있게 했다. 그땐 내 코가 석 자여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귀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 시절이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

그때 초등돌봄이 있었다면 난 가장 먼저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때 내가 지금의 서울시 중구형 돌봄과 같은 구직영 돌봄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아이돌보미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를 집에서 돌봐주신다면 어땠을까? 아니 만약 내가 임금 삭감 없이 일과 가정을 모두 지킬 수 있는 노동조건을 가질 수 있었다면? 보호자의 목소리마저 선택지를 없앰으로써 제대로 듣지 않는 건 아닌가? 여기에 초단기 노동을 해야 할 수 있는 노동자의 불안한 목소리는 또 제대로 듣고 있는가?

지금이라도 방향을 전환해야

그런데 13시간 초등학교인 늘봄학교는 주먹구구식으로 빠르게 가려 한다. 총선을 앞두고 자기가 세운 시간표보다 1년 앞당겨 전면 시행하려는 늘봄학교는 사실 아무 준비도 되지 않았다. 국비 지원은 0원이고 필요 예산은 삭감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하라고 한다. 초등돌봄 70%가 겸용교실에서 이뤄지는 지금 조건에서 아무런 투자가 없으니 공간과 시설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아침돌봄을 위해 특별실을 더 내어줄 판이다. 공간이 없으니 돌봄도 교육도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인력은 어떠한가? 운영 계획을 보면 늘봄은 아침돌봄을 위한 자원봉사자나 강사, 방과후 프로그램 강사, 초등돌봄전담사, 저녁돌봄 자원봉사자나 강사가 나눠 담당하는데 학교에서는 짧게는 하루 한 시간 일을 할 단시간 노동자를 저비용으로 이전보다 더 어렵게 구해야 한다. 늘봄학교 운영 업무는 교사에게 주지 않고 기간제교사를 뽑아 맡긴다고 하는데, 기간제교사는 교사가 아니란 말인가? 다 양보해도 늘봄 업무를 맡을 기간제교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늘봄을 신청한 아이들의 저녁식사는 간편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고, 늘봄 운영 중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그 어떤 처리 기준도 없다.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인데 이런 식으로 늘봄학교를 전면화했을 때 우리가 감당할 시행착오의 후과는 클 것이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질 높은 돌봄이 제공될 리 없다.

전희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3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늘봄학교 계획 관련 현장교사 긴급 설문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1.30 ⓒ민중의소리


초등돌봄에 대한 시도가 있은 지 20년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질 낮은 돌봄교실에 머물러 있는 건 그래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왜 괜찮았을까? 아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아서 아닐까? 돌봄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려면 이제라도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향 전환에는 반드시 아이의 목소리를, 보호자의 목소리를,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그렇다면 더 많이 일하는 사회를 위한 값싼 돌봄 체계 구축은 우리가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은가?

상상해 보자.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보호자가 임금 삭감 없이 하루 4시간만 노동하도록 지원하는 국가를. 급한 일이 생기면 가정으로 아이돌보미 선생님들이 오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가를. 그래도 필요한 돌봄 전담 시설은 마을마다 제대로 만들어 돌봄 전문 노동자들이 질 높은 돌봄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가를. 사람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다면 우린 어렵더라도 방향 전환을 모색하지 않을까? 

편집자주

이 글은 교육희망에도 함께 게재됐습니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