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무죄’ 판결 분석한 변호사들 “재판부, 삼성 측 증언 적극 수용”

‘제일모직이 합병 제안’ 모직·미전실 임원 진술 수용…교묘한 판례 왜곡도 지적

박용진·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1심 판결 분석 좌담회를 개최했다. ⓒ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불법승계 사건 무죄 선고는 재판부가 삼성 측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핵심 쟁점인 합병 목적을 두고 검찰과 삼성 측 주장이 엇갈린 가운데, 재판부는 삼성 측 인사의 증언을 근거로 합병이 이 회장 승계보다는 사업적 고려에 따라 추진됐다는 삼성 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합병비율이 이 회장에게 유리하게 산정됐는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국정농단 사건 판례를 교묘하게 왜곡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용진·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1심 판결 분석 좌담회를 개최했다.

발제를 맡은 김종보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는 불법승계 사건 핵심을 합병 목적의 허위성 여부라고 짚었다.

검찰은 합병 목적이 이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고 승계 작업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며,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은 고려되지 않았다고 봤다. 또한,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합병을 주도했다고 봤다.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당시 이 회장은 제일모직 가치가 높게 산정될수록 유리한 입장이었다. 합병 전 이 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으나,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을 4%가량 보유했다.

합병 목적에 대한 쟁점은 합병 추진 주체의 문제로 귀결된다. 재판부는 합병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사업성 제고를 주된 목적으로 추진됐으며, 제일모직 경영진의 제안이 합병 검토의 시발점이 됐다고 판단했다. 합병 6개월 전인 2015년 3월 윤주화 전 제일모직 사장이 합병을 제안해 삼성물산 경영진이 동의했고, 이후 미전실 검토와 이 회장 승인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근거로는 윤 전 사장을 비롯한 삼성 측 인사의 진술을 들었다. 윤 사장은 김종중 전 미전실 팀장에게 삼성물산과의 합병에 대해 문의해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듣고, 최치훈 전 삼성물산 사장을 만났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합병 제안 경위에 대해서는 제일모직 패션 부문의 해외 진출 방안 가운데 삼성물산과의 합병이 최우선 조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 전 팀장은 윤 사장 문의를 받은 이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의사를 확인했으며, 최지성 전 미전실 실장과 이 회장에게 보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찰은 이들 진술에 대해, 개연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미전실이 2015년 4월 작성한 ‘M사 합병 추진(안)’이 핵심 증거로 제시됐다. 해당 문건에는 합병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이 담겼다. 검찰은 미전실의 합병 추진 검토·결정과 별개로 우연히 해당 시점에 양사가 합병에 동의하고 미전실에 보고했다는 주장은 조악하다고 봤다.

반면, 재판부는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삼성 측 진술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M사 합병 추진(안)’이 윤 전 사장 문의에 따라 작성됐다고 판단했다.

김종보 변호사는 재판부 판단에 대해 “우연의 우연을 인정하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에버랜드(제일모직 전신) 상장이 추진된 2014년 이미 삼성물산과의 합병설이 증권사 리포트와 언론 보도를 통해 제기되고 있었다고 짚었다. 에버랜드가 패션 부문을 인수한지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윤 전 사장이 합병을 제안하고 우연히 미전실 의도와 맞아떨어졌다는 건 작위적인 주장이라는 시각이다.

류신환 변호사는 “이 회장은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하게 됐다”면서 “재판부는 이 회장 이익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서, 이 회장이 가해자가 되는 부분을 지워버렸다”고 짚었다. 합병을 거치면서 이 회장은 합병회사 지분을 16.4% 확보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합병 후 이 회장의 삼성전자 간접 지분도 크게 늘었다. 합병 전 제일모직을 통한 삼성전자 간접 지분이 0.32%였는데, 합병 후에는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이 더해져 삼성전자에 대한 간접 지분이 0.91%로 올라갔다.

‘M사 합병 추진안’ 중 주가관리 언급 부분. ⓒ기타

삼성 측 증언 적극 수용…“이 회장 편 들기 위해 노력한 판결”

증언 인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김남주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는 “윤 전 사장 증언은 다른 미전실 관련자가 특검에서 했던 증언, 검찰의 다른 증거와 대치된다”며 “실제 윤 전 사장이 2015년 3월 합병 제안을 했는지에 대해 관련 증거는 없고 증언만 있다”고 짚었다. 이어 “재판부는 ‘진술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는데,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건가, 없다고 판단한 건가, 잘 모르겠다고 판단한 건가”라며 “신빙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정도일 텐데, 그렇다면 해당 증언을 근거로 사실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얘기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증언 외에 다른 명확한 증거가 없음에도 삼성 측 주장을 그대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증거관계가 엉망”이라며 “재판부가 이 회장 편을 들기 위해 노력한 판결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들은 미전실이 종래 합병을 검토했다는 점에 대해 당시 모르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인다’는 재판부 판단에 대해서는 “합병설이 회자되고 있었는데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삼성 측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남근 변호사는 미전실 역할을 핵심 쟁점으로 꼽으면서, 재판부가 미전실의 위상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합병 과정에서 미전실 역할에 대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 업무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미전실이 업무 조정을 했다’고 판단했다. ‘미전실이 주도해 조직적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주도했다’는 국정농단 사건 판결과 대치되는 지점이다.

김남근 변호사는 “앞선 판결은 ‘주도적’이라는 표현을 썼고 1심 재판부는 ‘업무 조정’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거기에 어마어마한 의미의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삼성물산이라는 거대 기업이 합병 업무에 익숙하지 못해 제3자의 업무 조정이나 자문을 받아야 했는지 의문”이라며 “합병은 양측이 치열하게 교섭하면서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 작업인데, 미전실이라는 제3의 주체까지 포함하는 논의 구조에서 합병비율과 방식을 정했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전실은 계열사 사장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 판단·결정하는 조직이지, 합병 업무를 조정하는 실무 조직이 아니다”라며 “재판부가 미전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상식, 기본적인 사실과 너무 다르게 파악하면서, 앞선 판례와 완전히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남주 변호사도 “미전실과 이 회장이 가진 최종적인 결정·지휘 권한을 무시하고 어떻게 일개 계열사가 합병 제안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대주주 지분 구조를 비롯해 순환출자와 금산분리 등 기업집단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데, 윤 전 사장이 문의해 미전실이 움직였다고 판단하는 건 전체적인 맥락과 사실관계를 매우 잘못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4.02.05 ⓒ민중의소리

합병비율 문제 삼은 대법원 판례 왜곡

재판부가 합병 부당성과 관련해 대법원 판례를 왜곡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회장이 승계작업을 도와달라고 청탁하며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건넸다고 인정해, 이 회장에게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해당 판결은 1:0.35의 합병비율이 불공정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아 삼성물산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했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불공정한 합병비율에 따른 국민연금공단 손해를 막아야 할 임무를 위배했다는 판단이었다.

합병 부당성을 판단하는 핵심 잣대는 합병비율이다. 홍 전 본부장의 배임 혐의 사건에서 대법원은 ‘합병비율 개선이 이뤄지도록 하지 않음으로써 이재용 등 삼성그룹 대주주에게 합병 성사에 따른 가액 불상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가액 불상의 재산상 이득’을 인정한 대법원 판단에 대해 “적정 합병비율과 실제 합병비율 간 차이에 해당하는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1:0.35의 합병비율이 국민연금에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한 것이 아니고, 다만 합병비율 차이의 손해액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취지라는 게 김종보 변호사 설명이다. 그는 “1:0.35의 합병비율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하게 만든 건 배임이라는 것, 즉 손해를 가했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이라며 “적정 합병비율을 산정하기 어려워, 손해액은 얼마인지 모르겠다고 판단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재판부 심의는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였던 일성신약이 합병비율 산정에 있어 삼성물산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합병비율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당시 법원이 산출한 합병비율은 1:0.418이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도 삼성물산 주주로서 합병에 반대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ISDS)에서 국정농단 판결을 근거로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합병비율 부당성을 부정한 이번 판결이 향후 이 회장과 삼성 측에 대한 정부의 구상권 청구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김남근 변호사는 “정부는 엘리엇 손해배상에 대해 이 회장과 삼성물산에 구상권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이번 판결이 ‘주주가 피해를 본 게 없으니 정부가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주장에 근거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연금공단이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면 결국 국민연금에 돈을 맡긴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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