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김 장관은 지난해 9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파행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한 바 있고, 윤 대통령은 후임으로 김행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을 지명했으나 김 후보가 같은 해 10월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해 김 장관이 업무를 계속 수행해 왔다. 김 장관은 사의를 표명한 지 6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김 장관이 사퇴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후임 여가부 장관을 임명하지 않고 차관 대행 체제로 여가부를 운영할 방침이다. 부처의 수장 자리를 비워두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여가부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며 "법 개정 이전이라도 공약 이행에 대한 행정부 차원의 확고한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는 게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다음 국회에서 법 개정을 통해 정부조직법을 고쳐 여가부를 폐지하고, 관련 업무들은 각 부처로 재이관하도록 조치하겠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한 마디로 법치의 근간을 허무는 발상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여가부를 없애는 방안은 이미 윤 대통령 취임 첫해에 추진됐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야는 여가부를 존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김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지난해에도 장관 후보자를 추천한 바 있다. 그런데 취임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다시 대선 공약을 꺼내 들어 장관을 임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무위원의 1인이자 한 부처의 수장을 이렇게 내키는 대로 '뗐다 붙였다' 한다는 건 어떻게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공약 이행 의지는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권력자의 통치는 법의 제한을 받아야 한다는 게 법치주의의 근본 원리다. 대통령의 생각이 우왕좌왕한다고 그때마다 이렇게 할 거면 헌법과 법률이 무슨 소용인가. 일관성도 없다. 그동안은 공약 이행을 할 의지가 없어서 장관을 임명하고, 소임을 부여했다는 건가. 대통령실은 신영숙 차관이 직무대행으로 잘 할 수 있다고 둘러대는 데 그렇다면 신 차관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게 순리다. 윤 대통령은 봉건 시대의 군주가 아니다.